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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닻을 내리지 못하는 정주의 판타지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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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관계들과 단절됨으로서 이들 병든 몸이 수락하는 것은 결국 그때의 저곳과의 소통이다. 그녀들이 정주에 대한 판타지를 마주하는 순간은 이동의 회로에서 벗어나는 순간, 죽음의 시공간을 맞닥뜨려서야 가능했다. 약을 먹으면서 나는 상상해. 따뜻한 숲속. 소스리 솟은 이깔나무 가지에 물든 야들야들한 바늘잎, 해묵은 낙엽충을 뚫고 싹터오른 온갖 풀잎들. 키 다툼하듯 우썩우썩 자라는 여린 이파리들. 어데라 없이 피어있는 민들레며 은방울꽃. 진한 송진 냄새와 더불어 싱그러운 꽃향기가 감도는 것 같기도 해. 산들산들 봄바람이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불어오고 귀맛좋은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도 들려. 상상하는 것. 그것이 나를 살아있게 해. 하지만 이젠 상상하는 것도 힘겨워. 자꾸 졸음이 몰려와. 졸음을 견딜 수 없어서 약을 또 먹었어…. 이제 몸을 좀 뉘어야겠어.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 같아. 당신이 온 걸까? 아, 참 따뜻한 봄볕이야.(천운영, <<잘가라, 서커스>>) 풀, 꽃, 나무 등으로 구성된 공간적 은유는 자본의 폭식성에 대한 은유적 기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은유는 국경을 넘어 지구 반을 돌고 돈 ‘리나’가 꾸었던 “꽃나무가 되는 꿈”이나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국경을 넘은 ‘바리’가 보았던 “꽃동산”과 동일한 계열체이다. 해화가 만난 ‘따뜻한 숲 속’은 그녀들의 고단한 몸을 넘을 수 있는 정주의 판타지이며, 현실에 대한 부정적 투사이다. 이주 여성들의 멍든 몸, 병든 몸, 죽는 몸은 한마디로 우리 시대 다문화의 자화상이다. 근대 국민국가 안에서 이렇게 부실한 몸들은 건강한 몸에게 주체의 자리를 내어주고 언제나 타자화되면서 배제, 혹은 배제적 포섭의 위치에 명(命) 받았다. 이렇게 보면 한국 사회의 다문화공간 발(發) 슬픔의 진혼곡은 무엇을 말하는가. 해화, 명화, 만자, 쏘냐, 사비나, 리엔, 쯔이, 라메이… 이 초국적 여성들은 역설적으로 전지구적 자본주의화 혹은 초국적 자본의 승리를 입증해주는 전리품인지 모른다. 자본의 회로를 따라 이동하고 이동하는 운명의 플롯 안에서, 그러므로 이들이 은밀하게 꿈꾸었던 정주의 욕망은 불온하기 그지없다. 불온한 욕망을 품고 있는 여성들에 대해, 자본의 이름으로 젠더의 이름으로 이들을 호명한다. 이러한 회로에 갇힌 그녀들은 울고 있거나, 죽어 나가거나. 특히, 한국문학 작품 안에서 이주여성들의 멍든 몸, 병든 몸, 죽는 몸 등 슬픔의 표상으로서의 이들 신체는 언제나 하강의 플롯 위에 놓여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젠더 질서가 개입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문재원, <이주의 유령>,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04-106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104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