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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든 몸, 병든 몸, 죽는 몸: 다문화 공간 발(發) 슬픔의 진혼곡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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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의 「쁘이거나 쯔이거나」의 ‘쯔이’는 극단적인 폐쇄적 공간과 폭력성을 경험한다. 애초 그녀가 한국에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가 한류(韓流)에 있었다는 설정은 이미 소통, 교류, 다문화 등등의 상징적인 장치가 내재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도착한 그녀가 만난 것은 상상했던 도시가 아니라 하루 종일 일만 죽어라 해야 하는 농촌의 고된 노동과 그녀의 나이보다 곱절 많은 남편이었다. 남편에게 아내 ‘쯔이’는 돈을 주고 사 왔다며 오직 경비(經費)로 환산된다. 더욱이 그녀가 좁은 방에 갇힌 채 남편과 시동생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다 자살을 선택한다는 설정은 슬픔을 넘어 분노를 유발한다. 해화, 명화, 쯔이, 이들과 닮은 자매들은 도처에 있다. 산업비자로 한국에 왔다가 성매매와 마약으로 몸이 황폐화되어 밤마다 “신음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며 속으로 잦아드는 울음을 우는” 러시아 무용수 ‘쏘냐’. 외도와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대신해 푸른 멍을 달고 오늘도 미싱을 밟고 있는 ‘만자씨’. 한 남자를 따라 한국에 왔지만, 집 안팎에 도사리고 있는 성적폭력들 앞에서 결국 살인자가 되어 이 가학의 세계를 벗어나는 베트남 새댁 ‘리엔’.(정인, 「그녀가 사는 곳」) 병든 남편의 치료비를 위해 회사 사장의 씨받이가 되는 플롯은(허련순, <<바람꽃>>)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21세기 신파극이다. 병든 남편에 울고, 남편의 친구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울고, 병든 자신을 버리려는 사장을 잡고 울고, <<바람꽃>> 지혜경의 한국살이는 온통 눈물범벅이다. 낯선 나라에 온 수많은 이방인, 그녀들의 눈물은 출구 없는 이주의 회로 안에서 맴돌 수밖에 없는 신체의 언어다. 이러한 신체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해화나 명화, 혹은 ‘명화들’. 그녀들은 국경을 넘었고, 다문화의 이름으로 내걸린 깃발 아래로 모여들어 정주의 낙토를 꿈꾸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눈물 젖은 지난한 여정은 여전히 그녀들의 몸이 자본의 흐름에 쫓고 쫒기는 노동 착취의 순환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그녀들이 보여준 여정은 한마디로 물화된 섹슈얼리티 상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정착지에서 상실과 좌절의 문턱으로 이어지는 그녀들의 서사들은 하강의 플롯 위에서 진행된다. 잠시 상승의 판타지가 그녀들을 국경을 넘게 하는 다리가 되지만, 애초부터 그것은 신기루였던 것일까. 정주의 욕망을 안고 집으로 들어왔던 그녀들은 다시 이주의 유령들이 되어 집 밖에서 배회하고 있다. 하여 그녀들이 국경을 넘으며 욕망했던 정주는 실현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연기된다. 정주를 욕망하는 그녀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소통의 언어가 되지 못한다. 남편으로부터, 시어머니로부터, 이웃으로부터 단절과 소외의 경험이 쌓여가면서 그녀들의 몸은 결핵, 낙태, 약물중독 등으로 쇠락해지고 병든 몸이 되어간다. 사실, 질병은 근대적 공간에서 격리되어야 하는 타자이지만, 한편으로는 이 공간의 배면으로 이곳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소멸과 하강의 플롯을 향해 가는 이 병든 몸이야말로 여기의 다문화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재원, <이주의 유령>,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03-104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103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