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DB에서 검색하고자 하는 내용을 입력하고 를 클릭하십시요.


   영화 <완득이>의 불편한 진실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내용보기

전히 문턱 앞에서 서성이는 그녀들을 우리는 다문화의 이름으로 환대한다.(그녀들의 눈물과 상관없이) 여기서 해피한 다문화 영화 한 편을 보자. 영화 <완득이>(2011)는 관객 500만을 상회할 정도의 흥행작이다. 원작소설 <<완득이>>는 완득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성장소설이다. 소설에서 장애인 아버지나 베트남에서 온 엄마는 완득이의 역경을 드러내는 기호이자, 그를 영웅의 플롯에 올려놓기 위한 장치의 성격이 강했다. 영화 <완득이>는 배우, 시각적 요소, 사회적 상징 등과 어울리면서 완득이에만 초점이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특히 다문화담론 안에서 영화가 독해되면서, 완득이 보다 오히려 피부색이 다르고 한국말이 어눌한 완득이 엄마가 카메라에 강하게 잡혔다. 카메라를 따라 이야기를 요약해보면 대충 다음과 같다. 완득이를 버리고 집나갔던 엄마는 고등학생이 된 완득이 앞에 갑자기 나타나 완득이 집에 분란의 불씨가 된다. 그러나 곧이어 아들의 이해와 남편의 용서로 집에 다시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더군다나 엄마는 완득이 담임선생님과 함께 동네의 다문화실천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런데 이 해피엔딩이 불편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영화는 끝이 났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완득이 엄마는 왜 집을 나갔을까? 자식을 버린 비정한 모정이 반복되는 듯하더니 어느새 보니 엄마는 집에 들어와 있다. 이런 시적(詩的) 비약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완득이의 당혹스러움으로 엄마의 존재가 부각되거나, 완득이 엄마의 이야기는 아버지를 통해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발견한다. 오직 해피엔딩의 목적을 위해 달려온 ‘묻지마 가족’의 탄생은 그래서 가능했구나. 엄마(이숙희)의 말이 남편이나 아들에 의해 ‘통역되어’ 전달되는 이 구조는 무엇인가. 개체의 특이성은 괄호 안에 묶이고, 보편적 동일성으로 재포장된 너무도 익숙한 가족풍경. 영화 <완득이>의 해피엔딩에서 아도르노가 말한 ‘강요된 화해’가 자꾸 떠오르는 것은, 그래서 이 영화가 ‘계몽’의 수준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는 인상은 나만 느끼는 걸까?  
 
문재원, <이주의 유령>,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97-98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97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