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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소한의 공동성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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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대화되면 자연스럽게 거대한 사회적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이제 전설에 불과하다. 사회적 원한이 그 어느 때보다 비등한 시점에서, 게다가 증오가 제도화된 상태에서 사회는 혁명의 분위기에 휩싸이기보다는, 사회 자체를 암적인 신체로 탈바꿈시키고자 하는 파괴적이고 자살적인 충동에 지배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 내재한 슬픔이 증오의 형식으로 변환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 슬픔에 요즘 유행하는 힐링healing담론 따위를 갖다 대는 것은 기만일 뿐이다. 슬픔이 저항과 불복종의 형태로, 궁극적으로 분노의 형식으로 전이될 필요가 있다. 다니엘 벤사이드는 이렇게 말한다. 죄는 만회할 수 있거나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도덕적이며 게다가 신학적 개념이기까지 한 이 죄라는 개념과는 달리, 불의는 정치적 개념이다. 모든 이는 정의에 대한 실증적 관념 없이도 불의를 느낀다. 저항과 불복종은 늘 존엄에 대한 배려로 촉발된다. 저항과 불복종은 분노에서 생겨나는데, 이 분노는 결코 지치거나 무뎌지는 법 없이 늘 다시 태어나고 늘 새로워지며 모욕에 대항할 것을 요구한다. 이성의 덕은 분노에서 단호함과 신뢰, 끈기를 길러낸다. 용기 역시 그렇다. 드물고도 흔한 것이 용기, 이는 대항해 나아가기이다. 그리고 이는 존엄한 지점이 상처 입었다고 느끼는 자들, 단지 패배한 것이 아니라 경멸당했다고 느끼는 자들을 발끈하게 하는 것이다.(다니엘 벤사이드, 김은주 옮김, <<저항 - 일반 두더지학에 대한 시론>>) 문제는 그렇다면 어떻게 분노의 형식을 고안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혁명 속의 고독이 아니라 모멸감 속의 고독에서 그 형식을 만들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그것은 반드시 환멸과 냉소, 그리고 증오와도 달라야 할 것이다. 과연 손상된 존엄을 회복하는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분노는 어떤 형태를 가질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든 끈질기게 ‘공동성commonality’을 사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명중, <저항은 과연 가능한가>, <<우리 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80-281쪽.  
정명중 외저, <<우리 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80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