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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에 대한 복수, 자살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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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그 실상에 대해 잘 알려진 관계로, 히키코모리 또는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언급은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오늘날의 자살 풍토와 불특정 타인에게 무차별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증오범죄의 성행이 실은 백지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 두 개의 행동에는 사회에 대한 근원적인 복수심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은 주목에 값한다. 연상호 감독, <돼지의 왕>(2011) 한 장면 영화는 회사의 부도 탓에 아내를 살해한 황경민과 자서전 대필을 하며 먹고 사는 정종석이 중학교를 졸업한 후 15년 만에 해후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둘은 학창 시절 집단 따돌림과 학대의 피해자였다. 그런 그들에게 그들만의 영웅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김철이다. 불우한 환경에서 절망하는 법에 익숙해져버린 애늙은이 철은 위악(僞惡)을 통해 세상과 맞짱을 뜨고자 한다. 그래서 철은 종석과 경민에게 힘을 가지려면 악해져야 하고, 병신이 되지 않으려면 괴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돈은 있는 사람들만 버는 것이고, 자신들은 그들의 먹이가 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곧 자신들은 죽어서, 팔다리가 찢겨서야 가치가 생기는 돼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돼지들의 왕을 자처한 철은 폭력을 쓴 “너희들이 어른들이 됐을 때 웃으면서 지금을 얘기할 수 없도록 하겠다.”며 전교생이 모이는 아침 조회시간을 이용해 학교 옥상으로 올라간다. 곧 사회에 복수하기 위해 공개 자살을 하겠다는 식이다. 물론 철의 그와 같은 결심과 행동은 자신을 영웅으로 숭배하는 친구들 앞에서 호기를 부린 것에 지나지 않았음이 밝혀진다. 철은 자신의 행동을 과시하고 싶었을 따름이지, 실제로 공개자살을 실행에 옮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심지어 옥상에 올라가 자살 위협 시위를 하다보면, 결국 누군가가 자신을 말려 줄 것이라는 영특한 계산까지 해 넣었다. 그러나 그것이 치명적으로 잘못된 계산이었음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드러난다. 종석이 옥상 난간에 서있는 철을 슬쩍 밀어버림으로써 공개자살이 현실화돼버렸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는 자신을 파괴해서라도 사회에 복수하겠다는 관념이다. 만약 자신을 향한 폭력과 공격성의 방향을 타인 쪽으로 틀어버린다면 그것은 결국 증오범죄의 형태가 되고 말 것이다. 오늘날 신종범죄로 분류되고 있는 증오범죄는 특정한 감정을 촉발하는 실제의 대상과 나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게 결코 아니다. 증오를 부추기는 사회적 시스템과 나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희생자로 지목된 특정인은 그가 폭력의 대상이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를 갖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명중, <저항은 과연 가능한가>, <<우리 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74-276쪽.  
정명중 외저, <<우리 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74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