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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달리는 자에 대한 선망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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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소설인 김혜나의 <<제리>>(2012)에서 수도권의 2년제 야간대학을 다니는 주인공 나는 자신을 아무런 기술도 능력도 없는 인간쓰레기라고 여긴다. 그래서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어떤 선택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탓에 늘 쓸쓸하고 불안하며 우울하다. 나의 연인이자 호스트바 일을 하는 청년 제리도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아래에서 보듯 제리의 절규에는 불안이나 우울 외에 좀 더 심각한 것이 개입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왜, 그런 애들 있잖아. 시작부터 우리와는 다른 애들. 하다못해 100미터 달리기를 하더라도 나는 고스란히 100미터를 다 뛰어야 피니시 라인에 들어가는데, 어떤 애들은 경기를 시작할 때부터 나보다 40~50미터는 앞에서 달린단 말이지. 그렇지만 그게 절대 비겁하거나 부정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인 거야. 왜냐하면 그 애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그 자리에서 태어난 거니까. 그러니까 나는 아무리 죽어라 달려도 절대로 그런 애들을 뛰어 넘지 못해.”(김혜나, <<제리>>) 제리가 목격한 사회는 절망적이다. 우선 사회적 경쟁의 규칙과 조건이 결코 공정하지 못하다. 이를테면 100미터 경주에서 모조리 완주해야 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반 이상을 앞서 달리는 자가 있다. 경기 전에 이미 승패가 정해진 셈이다. 그런데도 그러한 사태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제리는 앞서 달리는 자에 대한 선망의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데 이 감정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부당하게 빼앗겼다고 느끼는 것에 대한 갈망을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선망하는 자의 내면에는 자신의 박탈을 환기시키는 것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나는 아무리 죽어라 달려도 절대로 그런 애들을 뛰어 넘지 못해.”라는 제리의 절규에는 앞서 달리는 자(=우월한 자)에 대한 원한resentment의 감정이 서려있는 것이다. 제리와 같은 이들에게 펼쳐진 미래는 뻔하다. 밥풀때기, 시민 아닌 것, 불가산의 잉여, 쓰레기가 되는 길 외에는 없다. 삶의 모든 영역으로부터 배제된 자들, 이른바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지 않는다는 진실을 목격한 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 패턴은 크게 세 가지이다. 우선 불공정한 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스스로 완전히 차단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일본의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 혹은 은둔형 외톨이를 떠올리면 좋겠다. 또 하나는 자살이나 자해와 같은 것으로 자기 파괴와 훼손을 통해 자신의 실존에 해를 가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특정 대상에게 공격 욕구를 투사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오늘날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묻지 마 폭력과 같은 증오범죄의 형태이다. 
 
정명중, <저항은 과연 가능한가>, <<우리 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73-274쪽.  
정명중 외저, <<우리 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73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