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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자놀이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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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사회는 극화된다. 한쪽 극에는 상품 구매 능력을 갖춘 자들(시민)이 있다. 다른 한쪽 극에는 구매 능력을 상실했거나 박탈당한 자들(시민 아닌 것)이 있다. 그리고 이 양쪽 극을 사이에 두고 시민권(=소비의 권리)을 획득하기 위해 군중들은 손에 땀을 쥐는 서바이벌 게임을 벌여야 한다. 필시 그것은 의자놀이를 닮았다. 이 놀이는 의자를 사람 수보다 덜 놓고 그 주위를 원형으로 돌다가 노래가 멈추자마자 재빨리 의자에 않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물론 의자를 차지하지 못하면 놀이에서 제외된다. 놀이에서 제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플레이어 중 누군가를 반드시 원 밖으로 밀어내야만 한다. 여하간 서바이벌 게임에서 불안한 군중들 중 거의 대부분은 결국 상실자 그룹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시민이 아니다. 그들은 비단 정치적 영역에서의 밥풀때기가 아니라 가능한 삶의 모든 영역으로부터 추방당한 밥풀때기이다. 혹은 불가산(不可算)의 잉여 곧 쓰레기일 뿐이다. 그들이 모두 갖고 있는 한 가지 특성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야 할 이유가 없으며,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없다면 자신들이 훨씬 더 잘살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혀 쓸모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그들은 최하층계급으로 버려진다. 그들이 없어도 나머지 사람들은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물론 옥에 티이며, 보기 흉하면서도 끈질기게 자라나서 정원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해치고 다른 식물들에게 갈 양분을 빨아먹는 잡초이다.(지그문트 바우만, 이수영 옮김, <<새로운 빈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군중들의 서바이벌 게임이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레알이다. 따라서 의자놀이와 같은 말랑말랑한 은유 따위로는 이 게임의 참혹함을 혹은 그 허구성을 온전히 설명해낼 수 없다. 기본적으로 모든 놀이에는 규칙이 있고, 그것에 대해 플레이어들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유희를 위한 공정한 경쟁이라는 관념이 필요하다. 그러나 군중들의 서바이벌 게임에 선의의 경쟁을 거쳐 만약 자신의 민첩성을 십분 발휘하기만 한다면 앉을 수 있는 의자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게임이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오래전부터 모든 의자들은 누군가의 차지였다. 따라서 종종 이 게임에 염증을 느끼거나 혹은 거기서 탈락한 자들 중 몇몇은 이 게임의 사악한 진실을 알아차리곤 한다. 즉 이 게임에서 밀려나서 자신이 시민 아닌 것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시초부터 그러니까 거의 태생적으로 시민과 시민 아닌 것이 결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각성하게 되는 것이다.  
 
정명중, <저항은 과연 가능한가>, <<우리 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71-273쪽.  
정명중 외저, <<우리 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71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