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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사회의 적들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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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시민들에 의해 질서유지의 훼방꾼으로, 또는 단세포적 복수 심리에 물든 기회주의자로, 그러다가 결국은 열린사회의 적으로 간주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열린사회란 과연 어떤 사회인가. “여기서 열린사회라는 건 계급이나 종족 그리고 이데올로기라는 신화가 더 이상 개인에게 굴레가 되지 않고 개개인이 사회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질적으로 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 물질적 풍요와 평등을 이룰 수 있는 마당이며 소수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눈뜬 다수에 의해 착실하고도 양심적인 사회의 운영이 기본 원리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오.”(김소진, <열린사회와 그 적들>) 소수의 사회 지배 대신 다수에 의한 양심적인 사회 운영(지배가 아니다!)이 제시되고 있다. 계급과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넘어 민주주의와 물질적 풍요가 동시에 가능한 사회가 곧 열린사회라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전망은 오늘날의 사태에 비춰 보자면 터무니없는 낙관주의(낭만주의)에 불과하다. 따라서 밥풀때기들 중 하나가 열린사회를 강변하는 자에게 대뜸 내지른 다음과 같은 일침이 오히려 리얼리즘에 육박하고 있거니와, 미래를 선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당신네들 자꾸 어려운 말을 씀시롱 머릿속을 헷갈리게 하는데 한번 물어나 봅시다. 우리, 우리 하는데 도대체 거기에 낄 수 있는 축은 누가 되는 거요? 이데올로기의 신화니 이성적 원리니 하며 거창하게 빚어내는 사회라면 우리 같은 못 배우고 빽줄 없는 떨거지들은 여전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 게 불 보듯 뻔한데 뭐가 진정한 사회란 거요?”(김소진, <열린사회와 그 적들>) 사회가 아무리 열렸기로서니 자신과 같은 떨거지는 초대받지도 못할뿐더러, 여전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위의 예언이 적중되는 데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게다가 민주주의가 또는 자유와 평등이 물질적 부와 공존할 수 있다는 식의 핑크빛(자유주의적) 전망이 얼마나 무지하고 섣부른 것인가, 하는 점을 증명하는데도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97년 IMF(국제구제금융) 사태를 맞으면서 우리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이 용이하게 양립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낱낱이 목격했다. 애써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이들이 있겠지만, 그때 이미 우리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절차적 또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다고 평가되는 이른바 87년 체제가 사실상 붕괴되는 것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IMF 사태 이후 연이은 기업들의 파산과 대량실업 사태를 기억할 것이다. 노동자들에 대한 유래 없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감행되었고,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가족과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안 그래도 취약했던 사회적 안전망은 총체적으로 무너졌다. 이제 사회란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찬 정글로 돌변해버렸고, 그 안에서 우승열패 혹은 승자독식의 법칙만이 선명했다. 심지어 자신 이외의 타자는 모두 적으로 여겨도 무방한 야만의 상태가 도래하는 듯했다. 사회가 개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혹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은 폐기 처분됐다. 삶의 질이 문제가 아니라 원초적인 생존 자체가 패닉 상태인 개체들에게 절체절명의 과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못 배우고 소위 빽없는 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여차하면 너나 가릴 것 없이 누구라도 밥풀때기로 주저앉게 된다는 사실을 경악하며 바라보아야 했다. 이제는 그러한 사태가 만성화되다보니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체념이 광범위하게 자리 잡은 듯도 하다.  
 
정명중, <저항은 과연 가능한가>, <<우리 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65-267쪽.  
정명중 외저, <<우리 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65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