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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계급의 쓰레기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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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된 지 20여 년이 넘어버린 소설 한 편이 요즘 부쩍 떠오른다. 바로 김소진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 그것이다. 참고로 이 작품은 1991년 <<문예중앙>> 가을호에 실렸다. 이 소설은 1991년 5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 도중 사복경찰(일명 백골단)에 의해 사망한 여대생 김귀정 씨의 시신을 놓고 백병원에서 시민대책위원회와 시위대 그리고 공권력이 맞서고 있는 긴박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 이 소설에서 갈등은 대책위 측과 그들에 의해 ‘밥풀때기’라는 경멸적인 호칭으로 명명된 자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밥풀때기로 불리는 자들은 하나 같이 온전치 못한 자들이다. 이를테면 프레스에 왼손을 잃고 산재 혜택마저 날린 채 공장에서 쫓겨나 날품팔이를 전전하는 강종천, 자칭 유명한 악사라고 으스대지만 인력시장에서 누구 하나 거들 떠 보지 않는 브루스 박, 묏자리 굿을 꾸리는 일을 하다가 결국 관 뚜껑을 열어 염낭쌈지를 훔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표천식, 고물 줍는 거렁뱅이 전을룡 등. 계급적으로 분류하자면 이들은 룸펜Lumpen이다. 보통 룸펜이란 주로 도시 주변을 떠돌며 구걸이나 범죄에 의지해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무리들을 가리킨다. 간혹 이들은 권력에 매수당해 반동적인 사회운동에 가담함으로써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탓에 이들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부정적인 존재로 낙인찍혀 왔다. 주지하듯이 마르크스는 이들을 난잡스러운 방탕아들이라거나 모든 계급의 쓰레기라고까지 했다. 그들은 공적 공간에서 어떤 대표성도 나누어 가질 수 없거니와, 그것이 허락되는 일도 드물다. 그들은 그야말로 비(非)존재not-being에 가깝다. 그런 탓에 이들의 내면을 지배하는 것은 억하심정과 같은 것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억하심정이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하는지 마음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소설 속 밥풀때기들의 말과 행동 역시 상식의 궤를 한참 벗어나 보인다. 물론 소설을 읽다보면 사회적 상처에서 비롯된 그들의 과격한 말과 행동을 동정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그런 밥풀때기들도 뜻한 바 있어 시위대에 가담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일반 시민들로부터 눈총을 사기에 딱 알맞은 것들이다. 이를테면 자신들의 뜻에 맞지 않다고 아무한테나 심한 욕설을 퍼부어서 시국토론 분위기를 망친다거나, 시위가 다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차량에 돌을 던지는가 하면, 심지어 같이 죽자는 말로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기도 한다.  
 
정명중, <저항은 과연 가능한가>, <<우리 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64-265쪽.  
정명중 외저, <<우리 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64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