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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의 경험이 없는 역사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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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감정을 하나만 꼽으라면 그것은 슬픔이 될 것이다. 온갖 폭력과 거짓, 음모 그리고 고통과 상처로 점철된 역사, 그 위에 드리운 지독한 슬픔의 음영들! 이 자리에서 지난 역사의 상처들을 모조리 들춰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문제는 그 숱한 상처들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과거사의 부정적이고 독소적인 잔재에 대한 발본적인 ‘청산(혹은 응징)’의 경험이 없었다는 점은 우리가 두고두고 발등을 찍어야 할 대목이다. 김지영 감독, 다큐 <백년전쟁>(2012)의 한 장면 독재와 부정부패의 장본인이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 그런가 하면 인민들을 그야말로 극심한 자기혐오(부정)의 극단으로 내몰았던 독재자가 조국 근대화의 영웅으로 받들어 모셔지고 있다. 더군다나 제 나라 시민들의 피를 제물 삼아 정권을 찬탈했던 군인들은 여전히 거리낌 없이 백주의 대낮을 희롱하고 있는 참이다. 해서 그 옛날 시인 윤동주가 한 점 부끄러움조차 없기를 갈망하며 우러렀던 그런 하늘이 우리에게는 더 이상 없다. 별을 노래했던 사랑과 서정이 종적을 감춘 복마전의 시대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와 더불어 당도한 지옥문 앞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나를 거쳐서 길은 황량한 도시로 나를 거쳐서 길은 영원한 슬픔으로 나를 거쳐서 길은 버림받은 자들 사이로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고, 혁명은 고독하다고 시인 김수영은 노래했다. 한데 이 이상 얼마만큼의 피와 고독이 우리에게 정녕 필요한 것일까. 시간이 비가역적이라는 사실을 비웃는 이들이 오늘날 곳곳에서 출현하고 있다. 역사는 진보하고 발전한다는 믿음이 산산이 부서진 대신, 역사도 얼마든지 역주행이 가능함을 증명하려는 듯 파렴치하고 기만적인 인식과 행위가 차고 넘친다.  
 
정명중, <저항은 과연 가능한가>, <<우리 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61-263쪽.  
정명중 외저, <<우리 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61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