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DB에서 검색하고자 하는 내용을 입력하고 를 클릭하십시요.


   “역사적 사명”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내용보기

1968년 12월 5일에 반포된 ‘국민교육헌장’은 국민의 윤리와 정신을 확고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정, 학교, 사회교육 등 모든 교육의 근본 지표가 되는 내용을 담아 이 땅에 출현하였다. 국민교육헌장에 입각한 교육이란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배우고 익혀야만 하는 것이다.”(「옆방의 옆방은 옆방」) 공상과학만화의 ‘픽션’을 ‘현실’로 착오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국민교육헌장에서 강조한 ‘역사적 사명’ 덕분이었다. 찌빠, 까목이, 쭉정이와 더불어 별책부록에 수록되어 있던 공상과학만화 한 편은 늘 이렇게 시작하곤 했다. ‘이 극화는 픽션이오니 현실과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일종의 경고문이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어린이들이 혹시라도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임을 망각하기라도 할까봐 말이다. 나는 한 번도 그 만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국가의 교육정책을 충실히 따르는 학생이었으며 현실과 공상 사이에서 헤맬 만큼 어리석은 인간도 아니었다. (김현영, 「옆방의 옆방은 옆방」) 그때는 스스로 경계하던 픽션이란 말이 정작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나’에게 픽션의 의미를 가르쳐준 사람은 동갑내기인 옆방 아이다. 무엇보다 진정한 픽션을 떠올린 장소는 학교다. 새마을 저금을 하던 날, 할머니에게서 삼백 원을 타 가지고 간 ‘나’는 웃음거리가 된다. 그날 어른들은 “그래, 저금은 많이 할수록 좋은 거란다. 착한 어린이는 그래야 하는 거야.”라는 교훈을 심어준다.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지만 기왕에 태어나버린 몸이라면 진정으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기 위해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했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그렇게 했다.” 그것이 바로 할머니 전대에 손을 대게 했고 옆방 아이의 저금통도 훔치게 된 계기다. “그렇게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금을 많이 하는 착한 어린이가 되었다.” <<아아, 이승복>>이란 책을 읽고 옆방 아이의 독후감을 베껴서 상을 받기도, 성적표를 까막눈인 할머니에게 속여서 읽어주기도 했다. 역사적 사명은 모든 일상을 거짓말과 속임수로 가득 찬 픽션의 세계로 만들어 주었고 그곳의 질서대로 살도록 가르쳐 주었다.  
 
한순미, <지울 수 없는, 학교>,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88-90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88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