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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살게 해줘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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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슬픈 사회는 희망을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어찌할 것인가? 삶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자본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제어시스템은 과연 있을까? 강상중은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 현대 사회의 자본에 의탁한 뒤틀린 행복론을 비판하면서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관심과 ‘거듭나기’ 개념을 강조한다. 만성적 불안의 시대에 삶의 희망을 찾아가자는 것이 그의 주된 논의이다. 그래서 그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좋은 과거를 축적할 것을 제안한다. 강상중의 이러한 제안은 온전히 스스로를 까발려서 바닥을 볼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러한 제안이 자살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과연 유효할까? 자신을 직면할 수 있는 것은 크나큰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적나라하게 보지 못하고 절망의 끝에 서 있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생존할 수 있는 힘이 먼저 필요하다. 생존할 수 있는 힘은 여러 층위에서 고려될 수 있다. 정서적인 위안과 안정적인 심리상태도 필요하고 경제적인 여건도 조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적 토대가 우선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삶에 필요한 내용들이 요청될 수 있다. 그러한 삶에 대한 요청은 곧 ‘타인과의 접속’에서 마련된다. 자신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이미 회의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미’를 발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좀 더 건강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다가서야 한다.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될 때, 자기에 대해서 이 세상의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다는 감정을 갖게 된다면,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는 마련된다. 자신이 짐스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자존감을 회복하게 될 때, 삶은 의미를 갖게 된다. 그것이 희망이다. 그래서 사람이 희망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희망의 발판이 마련된다면, 자기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아주 미천한 것들조차도 자기를 통해서 세계를 구성해나가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로서의 삶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물신화된 자본의 현대를 향하여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으리라’하고 직설적으로 노래하는 <레미제라블>처럼 내일을 꿈꿀 수 있을 때, 사람들은 생존할 수 있다. 불안정함을 강요받는 세계에서 여전히 불안하지만 희망을 품은 사람들은 고통스런 슬픔을 넘어서 생존하는 방식으로서 그냥 살 수 있어야 한다. “살게 해줘!”  
 
김경호, <자살 권하는 사회>, <<우리 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59-260쪽.  
정명중 외저, <<우리 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59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