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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아이들”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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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의 「볼록거울」(1987)에서 짧지만 강렬하게 제기되고 있는 질문은 앞서의 소설들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아이들이라니?” 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사회는 나이 스물이 넘은 대학생들을 그렇게 쉽사리 ‘아이들’이란 어휘로 부르고 있었다.” 물론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대학생들의 “부모들에겐 그들은 언제나 어리고 단순한 아이들일 뿐이리라.”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아이들’이라는 단어로 묶어내는 그 틀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에 있다. 대개 아이들이라고 부를 때 그 안에는 언제나 판단력이 부족한 미성숙한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것은 한 집단의 엄청난 음모와 가증한 거짓언어가 쌓아올린 투명한 유리의 장벽”(「볼록거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그로 인해 하물며 대학생들까지도 가정, 학교, 사회,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아이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매일매일 조금씩 자란다. 아이와 어른을 확연하게 구분하는 것은 그래서 엄격하게 말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어른 중에는 아이 같은 이도 있고, 아이 중에는 어른 같은 이도 있다. 최시한의 연작소설집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1996)이 이전의 소설들에서 한 단계 전진한 것은 바로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지우고 아이에게서 어른의 세계를, 어른에게서 아이의 세계를 포착하고 있는 지점이다. 고등학교 2학년 선재의 일기에는 어른들이 사용하는 “무기정학”, “질서”, “자율”, “대학” 등 견고한 말들에 대한 질문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것들은 선재의 관점에서 재해석된다. 글을 잘 짓는다는 이유로 담임선생님이 선재에게만 ‘질서를 지키자’라는 제목의 글을 지어오라고 하자 선재는 “모든 학생이 짓게 해서 좋은 글을 한 편 뽑게 되어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게 질서를 지키는 것 아닙니까?”라고 대꾸한다. “질서의 질서의 질서”에 대한 선재의 물음은 계속된다. “대학이 없었을 때는 사람들이 철학과 문학을 하지 않았을까? 그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면, 대학에 다니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것을 안 해도 될까?”(「구름 그림자」) 선재가 던진 질문들은 학교가 추구하는 질서와 체계에 흠집을 낸다. 학교의 선생님과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들은 “다들 말장난에 놀아나는 꼴이다. 이건 꼭두각시 놀음을 하는 극장이지 학교가 아니다.”(「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한순미, <지울 수 없는, 학교>,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82-83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82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