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소월 시비 아래서 파리한 당신과 함께 산유화를 읽었지. 이것이 이 세상 당신과의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고 나는 쓸쓸히 당신의 손을 잡아 손가락으로 한 소절씩 쉬어 짚으며 저만큼하고 읽어갔지. 햇살은 우리의 저만큼 위에 희미하게 떨어져 쌓이고 소월로 시비 아래 갈꽃이 사위기 전 당신은 저만큼의 거리 위에 뭉게뭉게 무너져 흩어지고 넓디넓은 세상에 나 혼자 남아 하늘과 땅의 거리만 늘리어 가고 있지.(「저만큼」)
아내의 죽음 앞에서 생겨난 슬픔은 이승과 저승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깊고 아스라하다. 그런 거리를 화자는 무형의 여행으로 극복한다. 그에게 있어 죽음은 그저 여행이다. 출발지는 있지만 종착점은 결국 현재인 그런 여행이다.
그래서 적어도 <<접시꽃 당신>>의 시편들에서만큼은 그에게 있어 죽음은 현재가 된다. 그 현재는 시간일 수도 있고, 일상일 수도 있으며, 꽃을 따는 바로 그 공간일 수 있기에 굳이 재회를 기약하지는 않는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죽음을 체화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