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던 구양수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물결이 솟구쳐 파도가 몰아치는 소리 같기도 하며, 쇠붙이가 부딪치고 병사들이 질주하는 것 같으며 말이 내달리는 소리 같았다. 그는 동자에게 나가 살펴보라고 한다. 동자는 별과 달이 밝은 밤에 밖에 인적은 없고 소리는 나무숲 사이에서 난다고 하였다. 이에 구양수는 이 소리가 가을의 소리임을 깨닫는다. 그는 ‘슬프구나! 그것이 가을소리로다, 어찌하여 왔는가?’ 하면서 산천이 적막해지는 가을의 자연현상과 인간사를 연관시켜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하였다.”
김홍도, <추성부도>, 1805년
1058년 중국 북송 대, 52세 초로의 문인 구양수(1007~1072)는 어느 날 가을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고 만물이 조락하는 계절의 변화를 새삼 느꼈다. 이에 자연현상의 추이와 인간생활을 연관시켜 인생의 덧없음을 탄식하며 「추성부(秋聲賦)」를 지었다. 노년의 쓸쓸함을 가을 바람소리에 비유하여 읊은 구양수의 「추성부」는 그 내용의 절절함과 문장의 유려함 등으로 송대 문학에서 문부 형식의 백미로 손꼽히며 문인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었다. 이를 그림으로 그린 <추성부도> 또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인들 사이에서 수 백 년의 시차를 두고서도 끊임없이 그려졌다.
700여년이 지난 어느 날 조선의 화원화가 김홍도는 구양수의 「추성부」에 공명하여 <추성부도>를 그렸다. 그림은 달이 뜬 한 밤중에 낮은 언덕에 둘러싸인 초옥 가운데서 한 선비가 밖을 내다보며 앉아있고 동자는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키는 모습이다. 「추성부」의 내용 중 구양수가 글을 읽다가 서남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동자에게 무슨 소리인가 묻자 동자가 숲을 가리키며 “달 밝고 별이 총총한데 은하수만 떠 있을 뿐, 사방에는 인적이 없으나 숲속에서 소리가 난다.”는 구절을 형상화 한 것이다. 그림의 내용과는 달리 김홍도가 왼편에 옮겨 쓴 「추성부」의 일부는 추성부의 마지막 부분이자 구양수가 가을소리를 매개로 이 글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인생무상의 슬픔을 담은 구절이다.
<추성부도>를 그린 1805년 무렵 김홍도는 정조대 최고의 화원화가라는 명성은 간데없고, 병들고 가난하여 무척이나 고단한 처지에 있었다. 이 그림을 끝으로 더 이상 기년작도 없고 그의 몰년 또한 바로 다음 해인 1806년으로 생각되어 <추성부도>는 그의 만년작이라 할 수 있다. 구양수의 「추성부」가 자연의 순환에 따른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순간을 읊은 것이라면, 김홍도의 <추성부도>는 이에 공명하여 인생의 가을날 쓸쓸한 자신의 처지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둘 사이에 매개가 된 것은 가을바람소리(秋聲)이다.
구양수의 「추성부」가 단순히 자신이 늙어가는 것에 대한 쓸쓸함만이 아니라 한 나라의 재상이자 명문장가인 그로서도 어찌 할 수 없는 인간존재의 무상함을 노래한 것이듯, 김홍도의 <추성부도>는 한 시대를 풍미한 화가였지만 화원이라는 중인신분의 한계, 그로 인해 시대가 바뀌자 더 이상 알아주는 이도 쓰임도 없는 한 인간의 슬픈 감정을 그림에 녹여 낸 고독한 독백이다.
18세기에 활동한 정선과 김홍도의 작품은 직접적으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나 슬퍼하는 장면을 그리진 않았다. 그럼에도 짙게 낀 비안개나 황량한 가지만으로 그 쓸쓸함을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친구를 잃은 설움이나 노년의 비애는 시공을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삶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