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고려 태조 왕건에 대항할 길이 없어 항복을 논의하자 마의태자는 이를 반대하였다. 결국 고려에 귀부를 청하는 국서가 전달되자 그는 망국의 슬픔을 안고 개골산(皆骨山:金剛山)에 들어가 초근목피로 여생을 보냈다.
935년(경순왕 9) 10월 신라는 후백제 견훤과 고려 태조 왕건의 신흥세력에 대항할 길이 없자 군신회의를 열고 고려에 항복할 것을 논의하였다. 태자는 천년사직을 하루 아침에 버릴 수 없다고 반대하였으나, 결국 고려에 귀부를 청하는 국서가 전달되었다. 태자는 통곡하며 금강산에 들어가 베옷[麻衣]를 입고 초근목피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신라의 천년사직을 고려에 귀부하는 것에 대한 그의 반대가 좌절로 끝났다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