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동은 주위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해명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만일 해명한다면, 이는 어머니의 죄악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왕에게 근심을 더해주는 것이니 이를 어찌 효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며 곧 칼을 품고 엎드려 자결했다.
호동왕자는 고구려 대무신왕(大武神王)의 아들로 낙랑을 멸망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이 과정이 잘 알려진 ‘낙랑공주가 자신의 나라를 배신하고 호동왕자를 위해 자명고를 찢은 일화’이다. 차비(次妃)의 아들이었던 호동은 원비(元妃)의 끊임없는 시샘과 모함으로 정치적 갈등을 겪게 되면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