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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의 시구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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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어느 날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프로야구 경기가 벌어지기 직전의 일이다. 몸매가 드러나는 핫팬티 차림에 기아 유니폼을 입고 시구자로 나선 텔레비전 연기자 김정민은 긴장된 모습으로 투수 마운드 앞쪽에 서서 셋업 자세를 갖춘 뒤 포수 미트를 향해 힘껏 공을 던졌다. 여자 연예인의 시구로서는 제법 훌륭하게 뻗어나가는 공이었지만 제구가 좋지 않아 왼쪽 타석에 선 타자의 등 뒤로 향하고 말았다. 어림없는 ‘볼’이었지만, 유명인의 시구란 으레 그런 것이다. 이후 선수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마스코트의 안내를 받으며 덕아웃으로 걸어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클로즈업한 텔레비전 화면에는 뜻밖에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짙은 아쉬움에서 흘러나오는 그야말로 ‘닭똥 같은 눈물’이었다. 시구라는 의례의 조건상 이 눈물은 분명 격에 맞지 않는 것이었지만, 현장에 있거나 텔레비전 중계를 보던 대중들은 이날 시구자의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했다. 그녀가 이 시구를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을 거라는 점, 단 한 번의 시구를 위해 적어도 며칠 동안은 직업 선수를 방불케 하는 투구 훈련을 받았으리라는 점을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시구자의 ‘눈물겨운’ 투혼은 실패한 시구에 그치지 않았다. 시구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일반인들과 함께 관객석에 앉은 그녀는 하필 비가 뿌리는 날씨 속에서도 홈팀 기아 타이거즈를 위한 응원을 이어갔다. 중계 카메라는 비에 젖은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응원에 열을 올리는 그녀의 모습을 자주 비추었다. 그녀의 응원이 효력을 발휘했는지 이날 홈팀 기아는 승리했고, 다음날 언론 매체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연예면과 스포츠면을 장식했다. <김정민 눈물 시구 이후 네티즌 “괜찮아요” 격려 쏟아져>, <김정민 눈물 시구, “잘 던져서 오늘 경기에 도움 되고 싶었는데”>…. 기아 타이거즈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의 응원가가 <목포의 눈물>이었던 만큼 이른바 ‘386세대’의 일원인 내게 광주의 무등야구장과 ‘눈물’이라는 감성적 표상의 결합은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하지만 연예인 시구자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나 그러한 눈물이 크건 적건 대중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꽤나 낯설은 일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나는 이 새로운 ‘눈물의 풍경’이 우리 사회 감성적 풍경의 변화 일반을 적시해준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대중문화에서 ‘눈물’은 센티멘털리즘의 발로였거나 한을 품은 정치적 공동체의 자기연민을 표상했다. 하지만, 이제 눈물은 ‘노력하는 개인’에 투사되는 진정성의 보증수표가 되었다. 몰입하는 개인에게 그것은 정치적 공동체의 자기연민보다 무거워졌지만, 공동체가 사라진 정치사회적 진공에서는 센티멘털리즘보다도 가벼워졌다. 
 
최유준, <눈물의 교환가치>,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23-225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23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