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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똘스또이의 슬픔

애(哀)
부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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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의 얼굴을 살펴보려고 의자 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엄마의 얼굴이 있었던 그 자리에, 창백하고 누르스름하면서도 투명한 물체가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엄마의 얼굴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물체를 좀더 주의 깊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낯익은 그리운 모습을 알아보게 되었다. 그 물체가 엄마라는 확신이 들자 나는 무서움에 몸을 떨었다. [......]
나는 알 수 없는 불가항력의 힘이, 내 눈을 이 생명 없는 얼굴로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다. 나는 엄마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상상력은 생명과 행복으로 가득 찼던 생전의 엄마 모습을 내 눈앞에 그려 보였다. 나는 내 앞에 누워 있는 시체, 나의 추억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물체를 바라보듯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이 시체가 엄마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
장례식 전이나 후에도 나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슬픔에 젖어 있었지만, 그때의 슬픔을 떠올리면 부끄러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나의 슬픔에는 언제나 이기적인 감정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누구보다도 더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했는가 하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줄 인상에 대해 신경을 쓰기도 했고, 또 쓸데없는 호기심에서 미미의 실내모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관찰하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오직 슬픔의 감정에만 빠져 있지 못하는 스스로를 경멸했고, 다른 모든 감정을 감추려고 애썼다. 이 때문에 나의 슬픔은 불성실하고 부자연스러웠다. 더욱이 나는 내가 불행하다는 것에 그 어떤 기쁨을 느꼈고, 스스로 불행하다는 의식을 자극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이기적인 감정이 내 마음속의 진실한 슬픔을 강하게 억눌려 버렸다. 
이 글은 똘스또이의 작품 {나의 유년시절}의 일부분인데, “도저히 참기 어려운 고독한 생활에 하루라도 빨리 끝을 내려 달라고 하느님에게 기도하고 있다”는 그의 숙모가 보낸 슬픈 편지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집필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똘스또이, 김근식/고산 옮김, {인생이란 무엇인가 3. 행복}, 동서문화사, 2004, 799-8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