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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종의 승하와 신하들의 슬픔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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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未,王疾革,扶坐,見宰樞曰,朕,以不德,天降之孼,疾疹不瘳,太子雖在幼少,德行宿成,諸公,同心協輔,無墜祖構,群臣,俯伏流涕,不知所言,王,召太子曰,予疾大漸,勢不復痊,爰釋重任,傳歸於汝,予,追思平生所行,得少失多,愼勿效焉,但當稽古聖賢之道,奉我太祖之訓,不懈于位,永綏庶民,太子俛首泣,不能起,王,命韓安仁,取國璽以授之,遂薨,時,太子幼,王諸弟,頗有覬覦心,李資謙奉太子卽位於重光殿,朝夕奠殯,哭踊盡哀,左右侍臣,哀慟不能止,甲寅,葬裕陵,上諡,文孝大王,廟號,睿宗。 
을미일에 왕의 병이 더해서 부축하여 앉아 재신과 추신들을 보고 이르기를, “짐이 부덕한 탓으로 하늘이 죄를 내려서 병이 낫지 않는다. 태자가 어리나 덕행이 숙성하였으니 제공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보좌해서 조종의 업을 실추함이 없게 하라." 하니, 여러 신하들이 부복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할 바를 몰랐다. 왕이 태자를 불러 이르기를, “내 병이 크게 더하여 형세가 다시 낫지 못하겠다. 이에 중한 소임을 너에게 전하여 준다. 내가 지금 생각하니 평생에 행한 일이 잘한 것은 적고 잘못한 것은 많다. 나를 본받지 말고 다만 옛날 성현의 도를 생각하고 우리 태조의 교훈을 받들어 지위에서 게으르지 말고 길이 백성을 복되게 하라." 하니, 태자가 머리를 숙이고 울면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왕이 한안인을 명하여 옥새를 가져다 태자에게 주게 하고는 드디어 훙하였다.
이때 태자가 어리니 왕의 여러 아우들이 왕위를 엿보는 마음이 있었다. 이자겸이 태자를 받들어 중광전에서 즉위하였는데, 조석으로 빈소에 전 드리고 곡하며 발 구르며 슬픔을 지극히 하니, 좌우의 시신들도 애통함을 참지 못하였다. 갑인일에 유릉(裕陵 경기 개풍군 청교면(靑郊面) 배야리(排也里))에 장사지내고, 시호를 올려 문효대왕(文孝大王)이라 하며, 묘호를 예종(睿宗)이라 하였다. 예종의 승하하자 이자겸 등 신료들이 슬픔에 빠졌다는 내용이다.  
{고려사절요} 권 8, 睿宗文孝大王 2, 임인 17년 
박용훈, {고려시대사}( 일지사, 2009).
이기백, {개정판 한국사신론}(일조각, 1989).
김당택, {우리한국사}(푸른역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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