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당나라에 유학해 얻은 바가 많아서 앞으로 자신의 뜻을 행하려 하였으나, 신라가 쇠퇴하는 때여서 의심과 시기가 많아 용납될 수 없었다.”
헌강왕의 왕권강화책으로 실시된 당 유학생 출신의 등용시켜 그들의 정책들을 반영하고자 하였다. 최치원 또한 배운 학문과 기량을 제대로 펼쳐보이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하여 진성여왕에게 구체적인 개혁안으로 <시무책 10여조>를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6두품과 그들의 정책은 진골 귀족들의 반발로 좌절되었고, 이에 최치원은 속세를 떠나 은둔하였다. 신분제 시대에 6두품 출신인 최치원이 그들의 정책에 대한 진골귀족의 반발로 좌절을 겪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