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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분제의 벽을 넘지 못한 천재 최치원의 슬픔

애(哀)
부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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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당나라에 유학해 얻은 바가 많아서 앞으로 자신의 뜻을 행하려 하였으나, 신라가 쇠퇴하는 때여서 의심과 시기가 많아 용납될 수 없었다.”  
헌강왕의 왕권강화책으로 실시된 당 유학생 출신의 등용시켜 그들의 정책들을 반영하고자 하였다. 최치원 또한 배운 학문과 기량을 제대로 펼쳐보이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하여 진성여왕에게 구체적인 개혁안으로 <시무책 10여조>를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6두품과 그들의 정책은 진골 귀족들의 반발로 좌절되었고, 이에 최치원은 속세를 떠나 은둔하였다. 신분제 시대에 6두품 출신인 최치원이 그들의 정책에 대한 진골귀족의 반발로 좌절을 겪게 된다.  
삼국사기 제46권 열전 제6 최치원 
{三國史記}, {三國遺事}, {新增東國輿地勝覽},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김부식, 李載浩 역, {삼국사기}(양현각,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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