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 파티가 열리고 있다. 여기에는 잡아먹는 자도 있고 잡아먹히는 자도 있다. 지금 남에게 먹히는 자도 전에 다른 사람을 먹은 적이 있으며, 지금 먹고 있는 자도 언젠가는 남에게 먹힌다. 그러나 지금 저는, 제 자신이 이 파티를 돕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 중국 잔칫상에 오르는 요리 중에 취하란 요리가 있지요. 새우가 푸들푸들 살아 꿈틀거릴수록 먹는 사람은 유쾌하고 흡족해 합니다. 저는 바로 이 취하요리를 거들고 있는 셈입니다. 성실하고 그러면서도 불행한 청년의 머리를 깨어나게 하고, 그 감각을 예리하게 해줌으로써, 만일 그들이 재앙을 당할 경우 곱절의 고통을 맛보게 하였고, 청년을 증오하는 자들로 하여금 깨어난 청년들의 배가된 고통을 감상하면서 쩌릿쩌릿 쾌감을 느끼게 한 것입니다. 빨갱이 토벌군이건 혁명가 토벌군이건 간에, 유식한 자들, 예를 들어 학생을 체포하면 노동자나 다른 비지식인들보다 훨씬 더 난폭하게 다루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보다 예민하고 섬세한 그들의 고통스런 표정을 감상하면서 한층 각별한 쾌락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런 상상이 틀리지 않다면 저의 자가진단은 완전한 실증을 얻은 셈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저는 결국 아무런 할 말이 없음을 깨달았고, 이렇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