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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인성이라는 사실(프란츠 파농)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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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인이다, 나는 흑인이다, 나는 흑인이다... 나의 외침은 더욱 겨렬해져갔다. 그 곁엔 내 불쌍한 동포들이 있었다. 신경증과 마비라는 극단을 살아가고 있던 동포들 말이다.
태평양 전쟁에서 부상당한 한 절름발이 고참병사가 내 동료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내가 내 의족에 익숙해진 것처럼 그대들도 그대들의 피부색에 그저 죽었다 생각하고 익숙해져 보라구. 우린 어차피 모두 피해자들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심전력을 다해 이 절단된 불구성을 인정하지 않기로 한다. 하나의 영혼이란 세계만큼이나 무한한 것이므로. 또한 흐르는 강물처럼 깊은 것이므로. 그러므로 나의 가슴은 무한정 팽창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주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게 절름발이의 겸양을 수용하라고 닦달한다. 어제, 세상의 아침을 향해 깨쳐 일어나면서 나는 하늘이 철저하고 완전하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나 역시 똑바로 서고 싶었다. 그러나 내장이 다 드러난 침묵이 내게로 무너져 왔다. 날개가 마비된 채, 책임감도 없이 한 발로는 無, 다른 한 발로는 무한을 떡 버티고 선 채, 나는 긴 울음을 울었다. 
알제리 혁명투사이자 지식인인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한 대목이다. 백인 사회에서 흑인이 비존재로 전락하고, 또 그 사실을 흑인이 아무 비판 없이 수용하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과 그러한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파농의 다짐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백인들이 규정한 <흑인성>이라는 편견을 흑인 자신들이 수용하면서 겪는 신경증과 마비 증세를 의사로서 진단하면서 그 절망적인 현실에 고통스러워한다. 그 절망적인 현실을 목도하면서 파농이 내뱉는 것은 비탄이다. 긴 울음은 일종의 각성을 의미한다. 정신과 의사로서, 또 투사로서 그는 흑인들이 흑인성 때문에 고통받지 않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싸움에 나설 것을 다짐한다. 
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 이석호 역, 인간사랑(1995). 
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 이석호 역, 인간사랑(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