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4월 12일부터 15일까지 밀린 일기를 정리한다. 설마하고 기대했던 한 가닥 희망의 마지막 끈이 끊기는 순간 나는 인생에 또 하나의 쓴 잔을 듦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가련한 삶이여! 답답한 인생이여! 무능한 나 박정열은 무엇을 어찌해야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가? 정들었던 나의 보금자리, 정들었던 나의 움막, 영원히 그 모습 볼 수 없구나. 망치부대들이 와서 부숴버린 것이다. 무정하고 냉정한 것이 이 세상 인심인지라, 약자에겐 한없이 강하고 강한 자에겐 한없이 약해 보이는 것이 우리의 인생임을 자각하노라. 불행이 겹치니 주위에 있던 못난 사람들도 우습게 보는 눈치다. 가련하고 불쌍한 존재들이 얼마나 우습고 경솔한가. 그러나 그들을 원망하거나 나쁘게 보지는 결코 않는다. 이 자신이 가느다란 실올에 매달려 튼튼한 밧줄인 양 어리석게 굴었던 나 자신을 자책할 뿐이다. 나는 그 동안 많은 것을 느꼈다. 나를 동쟁해주는 극히 소수의 우정, 나를 우습게 보는 다수의 인물, 그 모두 나에게는 인생의 철학적인 선생들이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지금, 그 누구의 비웃음도 묵살하고 있지만 무능하고 무능한 자신을 조금은 깨우쳐 준 듯하다. 기구한 운명에 너 박정열은 결코 쓰러지지 않으리라는 새로운 각오 아래 다시 출발해야겠다. 보금자리를 잃었으니 다시 땅굴을 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