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를 곡하는 글은 이렇다.
네가 세상에 태어났다가 죽은 것이 겨우 세 돌일 뿐인데, 나와 헤어져 산 것이 2년이나 된다. 사람이 60년을 산다고 할 때, 40년 동안이나 부모와 헤어져 산 것이니, 이야말로 슬픈 일이라 하겠다. 네가 태어났을 때 나의 근심이 깊어 너를 농(農)이라고 이름지었다. 얼마 후 집안의 화(禍)가 근심하던 대로 닥쳤기에 너에게 농사를 지으며 살게 하려 한 것뿐이니, 이것이 죽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었다, 나는 죽으면 기꺼이 황령(黃嶺)을 넘어 열수(洌水)를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이 내가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나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은데 살아 있고, 너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은데 죽었으니, 이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내가 네 곁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네가 살 수는 없었겠지만, 네 어미에 편지에, “애가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나의 홍역이 곧 낫고,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천연두가 곧 나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하였는데, 이것은 네가 사정을 헤아리지 못해서 이런 말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너는 내가 돌아오는 것으로 마음의 의지를 삼으려 한 것인데 너의 소원을 이루지 못했으니, 정말 슬픈 일이다.
신유년(1801, 순조 1) 겨울에 과천(果川)의 점사(店舍)에서 너의 어미가 너를 안고 나를 전송할 때, 너의 어미가 나를 가리키며 ‘너의 아버지이시다.’라고 하니, 네가 따라서 나를 가리키며 ‘나의 아버지다.’라고 했으나, 너는 아버지가 아버지인 줄을 실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웃사람이 집으로 떠나갈 때, 소라껍질 2매(枚)를 보내며 너에게 주라고 하였더니, 네 어미의 편지에, “애가 강진에서 사람이 올 때마다 소라껍질을 찾다가 받지 못하면 풀이 꺾이곤 하였는데, 그 애가 죽어갈 무렵에 소라껍질이 도착했습니다.”
했으니, 참 슬픈 일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정약용(丁若鏞)이 어려서 죽은 아들 농아에 대한 애통한 심정을 묘지문에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