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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인인지심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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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선왕은 맹자와 대화를 나누기 이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제 선왕이 집무를 보고 있던 중 마당에서 소를 끌고 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소는 나라의 권위를 상징하는 종을 제작하는데 희생물로 쓸 소였다. 고대에는 종의 틈을 메우는데 소의 피를 사용하였는데 그것을 흔종 혹은 흠종(釁鍾)이라고 한다. 그런데 끌려가는 소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두려워하면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자 제 선왕은 ‘죄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소’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다.[吾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 그래서 제 선왕은 그 소를 놓아주고 양을 대신 쓰라고 지시한다.[以羊易之.] 
맹자와 제선왕의 대화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제선왕은 소가 애처롭게 끌려가는 상황을 목격하고 희생으로 쓰이게 될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지시한다. 제선왕이 ‘애처롭게 끌려가는 소’라는 대상에 대해서 느낀 ‘슬픔’ 혹은 ‘애처로움’의 감정은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자연적인 생물학적 본능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는 윤리적 판단과 도덕적 정당화의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제선왕은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 즉 ‘소를 양으로 바꾸는 것’을 통해서 ‘소가 애처롭게 끌려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함’을 정당화한다.
맹자는 제선왕의 ‘행위’를 ‘생물학적 본능’에 기한 것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점에서 맹자가 슬픔의 감정을 도덕화 하는 기획이 자리한다. 맹자는 ‘소가 애처롭게 끌려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함’ 때문에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지시한 것’에 대하여 도덕의 단서를 제기한다. 죽음이라는 고통의 상황에 직면한 소를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의 기원을 맹자는 ‘도덕성’에서 찾고자 한다. 그래서 그 도덕성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의도적으로 ‘소를 양’으로 바꾸었다고 파악한다. 맹자는 윤리적인 행위를 하게끔 유도하는 ‘도덕’이 있고, 그러한 도덕에는 ‘원칙’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한 ‘도덕의 원칙’을 맹자는 ‘도덕성’으로 정초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본유적인 특성’ 곧 ‘도덕성’이란 것이 ‘마음의 싹’[端]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맹자는 이와 같은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의 ‘마음’이 감정으로 표출되는 것이 도덕성의 발로이고, 그러한 의식의 흐름은 곧 도덕성이 본유한 것임을 드러낸다고 본다.
맹자가 자연적 감정인 슬픔에 대한 도덕적 기획을 통해 도덕성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도덕적 실천’의 가능성을 ‘외부적 조건’이 아니라 내부적 자질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논점선취의 오류’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맹자가 슬픔의 감정이입, 그리고 도덕적 상상력을 통해 타자의 고통에 대한 ‘도덕적 슬픔’을 상상하고, 슬픔의 감정을 도덕화하려는 기획은 폭력성이나 잔인함을 제한하려는 감성적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상(上)7. 
김경호, [슬픔은 어디에서 오는가],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