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건대, 저는 할머니를 닮지 못하여 외손자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외할머니는 어버이처럼 이끌어 주시고 가르쳐 주셨으니, 받은 은혜를 헤아릴 길이 없사옵니다. 불효자의 죄가 쌓여서 그 화가 어머니께 미치고 말았습니다. 이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제 마음이 더욱 아픕니다.
세월은 머무르지 않고 흘러서 상복(喪服)을 입은 지가 이미 1년이 지났습니다. 집 뜰을 돌아보며 어버이를 그리노라면, 뵈오며 절하고 싶사옵니다. 너절한 상복차림인 저이지만, 외할머님께서 연세가 높으시어 상할까 두려웠습니다. 또한 훗날에 외할머님의 슬하에서 다시 뫼실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어찌 하늘은 차마 모시지도 못하게 하면서, 좀 더 오래 살게 해주지도 않는단 말입니까? 약 한 첩도 미처 드리지 못했고, 염할 때 쌀 한 숟가락 입에 물려드리지도 못했습니다. 멀리서 부음을 듣고는 돌아가신 슬픔을 견딜 길이 없습니다. 지금 와서 한 번 곡하니, 만사가 다 끝나버렸습니다. 먼 길 떠날 장례일이 다가와서 흰 상여가 떠나려 하옵니다. 길게 슬피 울면서 영결을 고하는 이 마음이 어찌 끝이 있겠나이까? 변변찮은 제물로 작은 정성을 드리노니, 부디 굽어 살펴 흠향하시기를 바라나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익희(金益熙, 1610-1656)가 외할머니를 그리면서 망자를 추모하는 슬픔을 제문에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