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외할머님 유인 류씨의 지극한 덕과 아름다운 행실을 저는 어머님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고, 그 중의 한두 가지는 직접 본 적도 있습니다. 친정부모님께 효도하시고 시부모를 공경하셨습니다. 지아비를 섬기는데 조금도 부덕(婦德)에 어긋남이 없으셨고, 자식들 가르치는데 의리에 입각하여 하셨습니다. 가정의 살림을 위해 부지런하고 검소하셨으며, 몸가짐은 얌전하고 바르셨습니다. 그래서 옛날 선비의 행실을 지닌 여선비[女士]라고 일컬은 사람과 아마도 거의 같을 것입니다. 계사년1833에 향년 75세로 자손들을 버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아, 애통하옵니다.
2년뒤인 을미년1835 10월 2일은 2주기가 되는 대상(大祥)입니다. 그러나 외손자인 저 임헌회와 임헌명은 서울에 있어서 소리를 내어 슬피 우는데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마침내 하루 전날에 멀리서 변변치 못한 제수(祭需)를 갖추어 집사로 하여금 대신 술을 따라 올리고 사뢰게 했사옵니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임헌회(任憲晦, 1811-1876)가 외할머니의 2주기 제삿날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회한과 슬픔을 제문에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