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고하건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누구인들 아버지를 잃어 하늘에 사무친 비통을 겪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죄악이 더할 수 없이 크니 자식 같은 자가 다시 있겠사옵니까?
공경히 생각하건대, 부군께서 어렸을 때는 병에 걸리셨고 한창 때는 세상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러나 불초자는 형편없어서 평소에 마음을 다하여 부모님을 섬기는 정성이 부족하였으니, 살아계실 때도 그 봉양을 다하지 못하고 돌아가셨을 때도 그 상례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길러주신 은혜를 영원히 끊어버리고 벼슬이 없는 사람들의 반열에 다시 끼어있으니,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매 슬픔과 부끄러움이 늘 깊사옵니다. 죄악이 더할 수 없이 크니 저희 자식 같은 자가 다시 있겠사옵니까?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원정(李元楨, 1622-1680)이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 이도장(李道長)의 묘에서 제사지내며 망자를 추모하는 슬픔을 표현하였다. 저자인 이원정은 부친의 생전에 등과하지 못하여 출사도 하지 못하였으나, 부친이 작고하진 10여년 만에 출사하여 그러한 내용을 묘소에서 아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