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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모부 권공 준 제문[祭姑夫權公儁文]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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嗚呼。小子之悲公者。又有甚焉。初因奉檄之至情。不克守東岡之志。末爲避濕之小嫌。未免蹈泥塗之辱。以幽谷之淸芬。自列於蓬艾之林。以黃流之瑟瓚。自混於瓦礫之間。進未有以展其所至。退未有以究其所期。尙幸齒未至而仕已倦。髮已蒼而氣未衰。庶幾享用遐齡。復我初服。以爲晩節之計。而公遽病矣。以公之平生。其所樹立。止於如此。豈眞所謂有命也者非耶。嗚呼。家尊之於公。同氣也。同志也。公之於小子。父兄也。師友也。其情與義。爲如何哉而病與貧俱。人事不振。病不侍而歿不扶。殮不臨而葬不訣。孤負幽明。慙痛曷勝。 
아아, 소자가 고모부(權儁)를 슬퍼하는 것은 심각한 이유가 있습니다. 초년에는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벼슬길에 나아간 지극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자 했던 뜻을 지키지 못하였고, 말년에는 검은 먹물로 쓴 교서를 피한다는 작은 혐의로 말미암아 진흙탕 속에서 더렵혀지는 불우를 면치 못하셨습니다. 때문에 깊은 골짜기의 맑은 향기가 다북쑥이 우거진 곳에서 스스로 변명해야 했으니, 누른 술이 들어 있는 옥잔과 같은 인재가 자갈 사이로 절로 섞이고 말았습니다. 결국 벼슬살이에 나아가서는 자신이 뜻했던 바를 펴지 못하셨고, 물러나서는 자신이 기약했던 바를 궁구하지 못하셨습니다.
... 아아, 부친(尹宣擧)은 고모부에게 서로 동기이고 동지였습니다. 고모부는 소자에게 아버지이시면서도 스승이셨습니다. 그 정리롸 의리가 어떠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병든 데다 가난하여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하였으니, 고모부께서 병환에 계신데도 곁에서 보살펴드리지 못했고, 돌아가실 때에도 붙들어드리지 못했으며, 염할 때에도 쌀 한 숟가락 입에 물려드리는 반함하지 못했고, 장례 할 때도 영결하지 못했습니다. 이승과 저승 간의 도리를 저버렸으니, 어찌 부끄럽고 애통함을 이루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윤증(尹拯, 1629-1714)이 스승과 부친처럼 모셨던 고모부 권준(權儁)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픔과 한탄을 제문으로 표현하였다. 살아생전 병든 고모부를 찾아뵙지도 못하고 장례의 영결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죄스럼움과 한탄의 감정이 보인다. 
윤증(尹拯), {명재선생유고(明齋先生遺稿)}권33, [제고부권공문(祭姑夫權公文)] 
신해진 편역,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의 미학- 애제문}, 보고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