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라! 이 소자가 16세 때 선생의 가문에 사위로 들어와서 지금 26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비록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워 선생의 도를 잘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첨하여 선생을 부끄럽게 하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여깁니다. 이제 선생이 멀리 떠나시는 날에 한마디 말로써 끝없는 슬픔을 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아, 벼슬 없이 선비로 일생을 마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수치로 여기지만, 비천하다고 생각하는 저들이 어찌 선비를 알 수 있겠습니까? 이른바 선비란 뜻을 높게 가지고 스스로 만족하나니, 유하혜(柳下惠)의 절개와 유신(有莘)의 자득도 이런 정도에 불과한 것이 옵니다. 이로써 보건대 선비로 일생을 마치는 것도 역시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
... 아아, 대들보가 꺾인 것과 같은 장인어른의 죽음을 슬퍼하고, 강한(江漢)으로 씻은 것 같은 장인어른의 고곃한 덕을 기려서 술잔을 올리며 통곡하노니, 만사가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어른의 모습을 빼닮은 한 두셨으니, 기쁘든 슬프든 잠시라도 부디 함께 손잡고서 서로 책선하고 화기애애하기를 잊지 않도록 하여 장인 어른께서 저를 알아주신 은혜에 보답케 하소서.
아아, 예전의 어린 사위가 이젠 백발이 된 바, 지금부터 죽기전까지 후회와 허물이 적기를 바라오니 오직 덕으로 사랑하시어 넌지시 도와주소서.
-조선 후기의 학자인 박지원(朴趾源, 137-1805)이 평생 처사로 살았던 장인 이보천(李輔天)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픔과 한탄을 제문에 표현하였다. 출사하지 못하고 평생 선비로 살았던 장인 이보천을 회상하면서 상실의 슬픔으로 인한 한탄의 정조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