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축년 11월 정사삭(丁巳朔) 9일 을축에 죽은 누이 이씨(李氏) 부인의 관을 광주(廣州) 세동(細洞)의 새 무덤으로 이장하는데, 그 이틀 전인 계해일에 둘째 오라비 창협이 술과 과일 등의 제물을 간소하게 마련하여 곡하고 술을 부어 강신하고는 다음과 같이 이른다.
아, 우리 누이의 관이 흙 속에 묻힌 지 5년 만인 지금 다시 밝은 태양을 보게 되었는데, 지상에 나온 지 6일 만에 또 무덤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누이와는 지난날 묘혈(墓穴)에 임하여 매장하는 것을 본 뒤로 영결하였는데 세월이 점차 흘러 묵은 풀이 무성하게 자랐으니, 그곳을 지날 때면 늘 부질없이 황량한 언덕의 소나무와 떡갈나무 사이에서 머뭇거릴 뿐 다시는 그 음성과 모습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오늘날 비로소 다시 봉분을 파고 혈을 열어 명정과 삽선(翣扇)을 보고 관을 어루만지노라니 마치 구천에서 너를 살려 내어 네 모습을 다시 보는 것처럼 얼떨떨해서 홀연 내 마음이 기쁜지 슬픈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너를 다시 땅속에 묻어 영원히 다시는 열어 볼 수 없게 되었으니, 마치 하늘이 너를 되돌려 주었다가 다시 빼앗아 가는 것만 같다. 아, 내가 이 슬픔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창협이 1681년에 죽은 누이를 이장하면서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애통함을 제문으로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