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년 10월 갑인삭(甲寅朔) 20일 계유는 바로 죽은 아들의 소상 날이다. 국상(國喪)이 빈소에 있는 상태라 은제(殷祭)를 지내지 못하고 간소한 절차로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늙은 아비가 질병을 무릅쓰고 다음과 같이 제문을 지어 흠향하기를 권하는 바이다.
아, 네가 아비를 버리고 떠나 돌아오지 않고 내가 너를 잃고 홀로 살아온 지가 어느덧 354일이나 되었다. 너는 어쩌면 이다지도 무심할 수 있으며 나는 어쩌면 이다지도 무딜 수가 있단 말이냐. 내 나이 30이 넘어서야 너를 얻게 되었는데, 너는 영리하고 조숙하여 5, 6세 때부터 벌써 밖에서 나를 따라다니며 도와주었다. 내가 재앙을 당해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뒤로는 외로이 은거하는 10여 년 동안 오직 너와 서로 의지하여 살아갔으니, 출입하고 기거할 적에도 오직 너에게 의지하였고 질병에 걸리거나 우환이 있을 때에도 오직 너에게 의지하였으며 산에 오르고 물가에 임하며 낚시하고 소요할 때에도 오직 너와 함께하였고 좋은 시절 한가한 날에 술을 마시며 시를 읊어 감회를 풀어내고 한가로이 즐기는 것도 오직 너와 함께하였으며 텃밭을 가꾸고 누대를 짓고 못을 파고 꽃을 심고 나무를 키우는 것도 오직 너와 함께하였고 고금의 인물과 문장의 수준과 일의 시비 득실을 강론하는 것도 오직 너와 함께하였으며 나아가 빈객과 문생이 출입하고 왕래할 적에 응대하는 것도 오직 너와 함께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너의 기풍과 격조, 언론과 식견이 또 내 뜻에 맞지 않는 것이 드물었으니, 서로 형적이 없이 이해되고 편안히 마음이 맞아 더 이상 곤궁한 생활이 슬프지 않고 부귀가 부럽지 않았다. 부자간의 사랑이야 누구에겐들 없겠는가마는 부자간에 마음이 맞아 느끼는 즐거움으로 말하면 또 어찌 나와 너 같은 경우가 있겠느냐. 그런데 너는 이 점을 유념하지 않고 결연히 영영 떠나 나를 세상에 홀로 남겨 둠으로써 내가 의지하여 살아갈 것이 없게 하였다. 아, 어쩌면 그리도 무심하단 말이냐.
처음 내가 너를 잃었을 때에는 정신이 없고 멍하여 네가 정말로 죽고 나 홀로 남았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장사를 치르고 돌아와 손님들이 흩어지고 문밖이 텅 비어 집 안이 적막해져서야 안에는 네 어미와 네 처와 네 누이 밖에 없고 밖에는 두세 명의 문생만이 이따금 왕래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제서야 네가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집 안에 있을 때에 곁에 모시고 앉아 있을 자 누구이고, 내가 집을 나설 때에 따라나설 자 누구이며, 나의 말을 들어줄 자 누구이고, 나의 시에 화답할 자 누구이며, 내가 밖에서 돌아올 때에 말 머리에서 맞이할 자가 이제 누구란 말이냐. 멍하니 외롭게 지내고 실의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마치 썩은 나무에 가지가 없고 불 꺼진 재가 타오르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은 인생이 어찌 즐거울 수가 있겠느냐. 그런데도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추우면 옷을 찾고 병이 들면 약을 찾아 구차히 1년의 세월 동안 수명을 연장해 왔으니, 심하다, 나의 무딤이여.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창협이 죽은 아들 숭겸의 소상에 즈음하여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애통함을 제문으로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