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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아들의 무덤에 제사할 때 고한 제문[祭亡兒墓文]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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維歲次壬午三月壬午朔初十日辛卯。老父力疾來祭于亡兒崇謙之墓。瀝酒長嘷而告之曰。嗚呼崇謙。汝何爲而至此。汝何爲而至此。吾以汝正直磊落。言議不苟。謂可以樹風節於末路。吾以汝通曉敏達。慷慨敢爲。謂可以建事功於一時。吾以汝詞藻夙茂。才力豪健。謂可以高步秇苑。軼古而邁今。吾以汝識慧透悟。淸明寡慾。謂可以卒反儒學。事半而功倍矣。今顧何爲而至於此耶。死生窮達之際。其理固微。然亦有可推以知者。氣淸者。類多脆薄。則才固有不壽者矣。質厚者。或少發揚。則善固有不達者矣。若汝之高標秀氣。豐軀盎背。卽其表而觀之。亦豈夭促之法。窮賤之相哉。而然而至此者。何也。若謂余蔽於父子之私。而所見者謬也。則自汝之幼而至於長。近而一家親戚。遠而四方人士。凡一見汝者。無不賞其風儀而服其才志。異口同辭。稱爲國器。若是者。豈皆謬哉。而然而至此者。何也。然余尙以汝志氣太剛決。心事太白直。凝靜沈密。有所不足。慮或妨於致遠。常以是爲戒。然古之名賢君子。其資稟氣象。固亦有類此者。雖其年壽不永。而要皆卓然有立於世。苟能如是。足矣。何必期頤。余雖不以是形諸言語。而隱之於心。未嘗不以此自恃。誠以天之生材。固不偶然。作人如汝。終必不泯泯以死。此其理宜可徵也。而然而至此者何也。豈亦時運之衰。天方靳於生材。而齷齪淟涊之徒。相望於世。於是而一有英秀特達者出焉。則固天之所仇疾。而其椓喪夭閼。使不得有爲於世者。亦其理然耶。若然者。其始又何爲而生之。徒與人爲一場戲劇耶。豈以余獲罪於天而使汝至此也歟。則自省平生。忠信正直。雖不足以感神明。而若乃忌忮刻害。陰譎詭詐。可以積殃而召禍者。則亦不覺其有是也。獨於年來。冒竊學道之名。妄爲人士所尊。而實無以副之矣。則欺人欺天。爲莫甚焉。故天以是罰之也耶。設令如此。亦何不勦絶吾命。而顧使汝有才無罪者。罹此夭枉之災耶。豈以余年已五十。死無所恨。必奪其所鍾愛。使其白首窮獨。飽嘗痛毒。然後方爲酷罰極禍而可以懲其罪也耶。將天與人。固邈然不相關。而壽夭窮達。未始有命之者耶。抑雖有之而人事之所推盪。命亦隨之以消息。故汝之稟於天者。雖未嘗不厚。而其護養之不謹。疾病之失治。固有以夭閼之者耶。若然則其所可悔可恨。豈止一二。而吾安敢責命於天哉。然而終古聖賢。於死生禍福之際。要莫不歸之於天者。又何謂也。此余之所惝怳疑惑而莫測者也。然而無論命與非命。有以致之與無以致之。汝則旣死矣。百身不可以贖。而九原不可以復作矣。苟達觀者。固宜置之無可奈何。而其不及者。亦可以日遠而日忘矣。顧余之冤酷痛毒。歷時而愈深。觸境而難忍者。誠以身世之窮獨。情理之苦切。有種種可哀者耳。 
임오년 3월 임오삭(壬午朔) 10일 신묘에 늙은 아비가 병을 무릅쓰고 죽은 아들 숭겸의 무덤에 와 제사 지낼 적에 술을 뿌리고 길게 통곡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고하는 바이다.
아, 숭겸아, 네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느냐, 네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느냐. 나는 네가 정직하고 도량이 넓으며 언론이 구차하지 않은 것을 보고는 도가 쇠한 이 세상에서 꿋꿋한 절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나는 네가 모든 일에 환히 통달하고 민첩하며 강개하여 과감한 것을 보고는 세상에 큰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나는 네가 일찍부터 문장력이 풍부하고 재주가 뛰어난 것을 보고는 문단에 이름을 날리며 고금의 문장을 능가할 것이라 여겼다. 나는 네가 사리를 꿰뚫어 보는 지혜를 갖추고 성품이 맑고 밝으며 욕심이 적은 것을 보고는 결국 유학(儒學)으로 돌아와 손쉽게 성취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지금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이냐.
삶과 죽음, 곤궁과 영달이 갈리는 이치는 실로 미묘하다. 그러나 또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기(氣)가 맑은 자는 대체로 허약한 관계로 재주 있는 사람이 장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자질이 중후한 자는 간혹 제대로 발양하지 못하는 관계로 선한 사람이 영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인품이 높고 기(氣)가 빼어난 데다 체구가 풍만하고 덕스러웠으니, 겉으로 볼 때에 어찌 단명하거나 곤궁할 상이라 하겠느냐. 그런데도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어째서란 말이냐? 만일 나더러 부자간의 정 때문에 잘못 본 것이라고 한다면, 네가 어려서부터 장성할 때까지 가까이는 일가의 친척과 멀리는 사방의 인사(人士)가 모두 너를 한번 보면 네 풍채를 칭찬하고 네 재주와 뜻에 감복하여 이구동성으로 나라의 그릇이라고 칭하였는데, 이러한 것이 어찌 모두 잘못된 평가이겠느냐. 그런데도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어째서란 말이냐?
그러나 나는 오히려 너의 지기(志氣)가 너무 강하고 결연하며 심사가 너무 솔직 담백하여 고요함과 침착함과 신중함이 부족한 것을 보고 원대한 뜻을 이루는 데에 방해가 되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늘 주의를 주었다. 그렇지만 옛날 이름난 현인군자들 중에도 자품과 기상이 이와 같은 분들이 있어 비록 장수하지는 못하였으나 모두 세상에 뛰어난 업적을 세웠는데, 그처럼만 해도 충분하니 어찌 굳이 백 살까지 살 것이 있겠느냐. 내 비록 이런 생각을 말로 표출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 품고서 자부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하늘이 인재를 내는 것은 실로 우연하지 않아서 너 같은 사람을 낸 이상 끝내 아무런 자취도 없이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치는 징험할 수가 있다. 그런데도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어째서란 말이냐? 어쩌면 시운(時運)이 쇠하면 하늘이 인재를 내는 데에 인색하여 속이 좁고 비루한 무리가 세상에 가득하게 되는데, 그러한 때에 영특하고 걸출한 인재가 나오면 하늘이 그것을 싫어해서 상해를 가하여 일찍 죽게 함으로써 세상에 활약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또한 이치란 말이냐? 만약 그렇다면 애당초 또 무엇 때문에 그런 사람을 내어 부질없이 사람들과 한바탕 희극을 연출한단 말이냐?
어쩌면 내가 하늘에 죄를 지어서 너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단 말이냐?
....그러나 천명인가 천명이 아닌가, 사람의 힘으로 초래한 것인가 아닌가를 막론하고 너는 이미 죽었다. 내가 백 번을 대신 죽는다 해도 네 목숨을 되살릴 수는 없고 너는 구천에서 다시 일어날 수가 없으니, 달관한 사람이라면 실로 어찌할 수 없다고 체념할 것이고 그보다 못한 사람도 날이 갈수록 잊어갈 것이다. 그런데 나의 깊은 원통함과 고통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감흥을 일으키는 사물을 접할 때마다 마음을 가누기가 어려우니, 실로 내 신세가 딱하고 마음이 쓰라린 나머지 그처럼 여러 가지로 슬픈 일이 있는 것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창협이 죽은 아들 숭겸의 무덤에서 제사지낼 때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애통함을 제문으로 표현하였다. 
김창협(金昌協), {농암집(農巖集)}권30, [제망아묘문(祭亡兒墓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