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년 7월 병술삭(丙戌朔) 15일 경자는 죽은 딸 오씨 부인이 죽은 지 1주년이 되기 이틀 전이다. 늙은 아비가 동교(東郊)에서 병을 무릅쓰고 들것에 실린 채 상차 앞에 와서, 은전(殷奠 삭망(朔望)에 지내는 제사)을 설행하는 기회에 다음과 같이 제문을 써서 슬픔을 고하는 바이다.
내 나이 이제 50대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온갖 재앙을 다 겪고 전야(田野)에 물러나 초췌하고 곤궁하게 지내며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더 이상 기웃거리는 일이 없었다. 그래도 너희 형제가 차례로 장성하여 제때에 시집 장가 가고 당장 역병에 걸려 죽는다거나 요절하는 등의 불행이 없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혹 나를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나도 스스로, ‘사람이 이런 복을 얻었으면 분수에 족한 것이니, 정말 다른 변고 없이 여생을 마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였다. 일찍이 네 어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네 어미도 내 말을 수긍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 이러한 복, 이러한 소원이 어찌 사치스러운 것이겠느냐. 그런데 하늘은 어찌하여 갑자기 너를 빼앗아 가고 또 어찌하여 숭겸(崇謙)이까지 연이어 빼앗아 가서 나로 하여금 백발의 나이에 올연(兀然)히 천하에서 제일 딱한 사람이 되게 하였단 말이냐.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창협이 오진주의 아내이자 자신의 셋째 딸이 23세의 나이로 죽자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애통함을 제문으로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