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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속일 수 없을 때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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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내가 더 이상 나의 삶을 속일 수 없을 때, 그럴 경우, 우리는 인생의 막장에 봉착하게 된다. 파국에 직면해서 우리는 햄릿처럼 ‘사느냐, 죽느냐’라고 하는 단일한 사태와 마주한다. 이 사태에서 다른 고려 사항은 없다. 오직 그 사태만이 존재의 전영역을 지지한다. 생존과 죽음은 선택과 결단의 문제로 남는다. 생존을 선택하였다면, 그 이후부터 삶의 난관에 대해 의지적으로 대면하게 될 것이다. 죽음을 선택할 경우, 우리는 그것을 자살이라고 부른다. 한자의 자살(自殺)나 영어의 자살suicide은 자기 자신(自, sui)을 죽이다(殺, cædo)라는 두 글자가 조합된 것이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의 여부는 아직도 논란거리이지만, 자살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인 것만은 명백하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1968년도에 자살에 대해서 “죽음에 대한 의지를 지니고 자신의 생명을 해쳐서 죽음이라는 결과에 이르는 자멸행위”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전근대 전통시대에는 자살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동양의 전통사회에서 자살은 금기시되고 부정되었으나 사회적 죽음의 경우에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공자는 <<논어>>, <위령공>편에서 ‘살신성인’을 말하면서, 도덕인격을 실현하기 위한 공적 자기희생에 따른 죽음을 긍정한다. 그리고 “슬픔을 토해내고 마음을 달래자” 찾아온 죽음 앞에서 “죽음을 피할 길 없을 바엔 차라리 목숨을 아낄 생각이 없네.”라고 하여 스스로 돌덩이를 안고 멱라에 몸을 던져 자살한 굴원의 죽음도 ‘공적인 죽음’으로 인정되어 후세의 귀감으로 호명된다. 이처럼 자신의 생명을 끊는 자살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죽음이 당대 사회의 가치 규범과 질서에 부합할 경우, 용인되는 사례가 많다. 이를테면, 적장을 품에 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나, 적에게 투항하지 않고 자결하거나 투신자살한 사람들도 숭배의 대상이 된다. 정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남편을 따라 자살하는 여인의 경우도 사회적 가치질서 유지를 위한 모범으로 숭앙된다. 사회적 죽음으로서의 자살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옹호된다는 것에서 거꾸로 상대적으로 개인적 죽음으로서의 자살에 대한 금기시 경향을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개인의 자살과 관련한 전통시대의 기록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수치심에 따른 자살을 용인하였던 로마사회를 제외하고 서양의 문화적 전통에서 자살은 부정적인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리스 사회에서는 자발적 의사에 의해 자살한 자에 대해서는 묘석에 이름조차 새길 수 없게 하였고, 심지어 시체를 훼손하기 까지 하였다. 자살에 대한 편견과 낙인은 기독교적인 서구사회에서 더욱 금기시되었다. 중세이후 르네상스 시기까지 자살은 ‘악마의 유혹’에 의한 것이라고 믿었고, 자살자의 재산은 몰수당하였다. 자살은 생명을 주신 신의 뜻에 반하는 이단적인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18세기 들어 자살은 개인의 심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 혹은 질병과 같은 것에서 기인하는 행위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자살은 언급하기 힘든 것이었고, 그러한 자살에 대한 금기는 죽음을 마치 자연사나 사고사로 위장하게 만든다. 자살은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행위로 파악함으로써 오히려 은폐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현대에 이르는 시기에 자살에 대한 시각은 자신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지만 사회적인 문제와 연관하여 파악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자살이 사회나 체제와 연관된다는 점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자살통계’를 은폐하려는 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타인의 삶>(2006)에서는 노년의 한 예술가의 자살과 ‘자살자의 통계’까지도 통제하려는 사회주의 국가 동독의 전체주의적인 실상을 보여준다. 자살통계는 개인적인 죽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사회가 유지되는 삶의 질과 가치까지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살이 ‘자기 죽음’을 목적으로 한 행위라 하더라도 죽음 그 자체가 고의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사고에 의한 것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자살을 자발적 죽음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순교자로서의 죽음으로, 혹은 성전의 희생자로 달리 규정될 수도 있다. 자살의 역사에 대해서 탐구한 마르탱 모네스티에는 그의 저서 <<자살>>에서 자살을 심한 우울로 인한 자살, 병적 자살, 보복적 자살, 안정된 상태에서의 자살, 이기적 자살, 의무적인 이타적 자살, 편집광적 자살, 충동적 자살, 운명론적 자살, 영웅적 자살, 적극적 자살, 소극적 자살, 이론적 자살, 열광적 자살, 망상적 자살, 혼돈 상태에서의 자살, 살인청부업자의 한 자살, 희생적 자살, 유희로서의 자살, 전략적 자살, 경계 반응적 자살 등으로 다양하게 분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살에 대한 다양한 분류는 자살이 비록 자기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사회적인 측면도 고려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자살은 개인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적인 현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김경호, <자살 권하는 사회>, <<우리 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48-251쪽.  
정명중 외저, <<우리 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48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