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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이지 않는 삶, 그러나 속는 삶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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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기억이지만 1970~1980년대 한국사회에서 푸슈킨은 이발소에 다니는 나이이면 누구나 한번쯤 들었던 사람이었다. 아니 그의 이름은 몰라도 ‘두 손 곱게 모아 기도하는 소녀’의 그림과 함께 적혀있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한번쯤 읽어보았던 시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삶의 시간에서 직면하는 슬픔은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린 것과 같기에 상실과 좌절감을 수반한다. 이 시는 그러한 현재의 삶이 비록 고달프지만 미래는 보다 나으리라는 낙관적인 인생관을 보여준다. 오늘의 고난과 시련을 견뎌내고 우울을 극복하라는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시는 뒤집어 보면, 오늘의 현재가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고통과 우울의 시간인가를 보여준다. 이 시가 이발소의 공통적인 장식품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그 당시 한국사회의 우울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렇게 70~80년대를 건너온 2012년,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두 개의 얼굴이 병존한다. 타자에 의해 기획된 압축된 근대화의 폐해는 사회의 곳곳에 압축되어 터질듯 한 질곡으로 산재해 있다. 1980년대 어느 가수가 노래한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이 바로 우리의 <아 대한민국(정수라 노래)>이기도 하고, 1990년대 어느 가수가 부른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이 있고,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이 있는 곳이 나의 <아 대한민국(정태춘 노래)>이기도 하다. 동일한 제목의 <아 대한민국>이란 두 노래는 철지난 시대의 것인 듯하지만, 여전히 아직도 그리고 강고하게 우리 시대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의 대한민국은 IMF 이후 전지구적인 금융파동을 겪으면서 점점 두 개의 얼굴로 양극화되어 가고 있다. 희망과 행복의 나라 대한민국과 자살과 우울의 나라 대한민국이다. 삶이 나를 속이지만 그래도 좀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왔던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사실 삶은 나를 속이지 못한다. 삶은 주어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제나 누군가의 삶이다. 속인다면 내가 삶을 속일뿐이다. 삶이라고 하는 인생의 시간은 나에 의해 쓰여진다. 흔히 인생이라고 하는 빈 노트에 흔적을 남기는 것은 결국 ‘나’에 의한 기록이다. 우리는 그러한 ‘기록의 흔적’을 나의 것이 아닌 양 타자화 하려한다. 타자화의 바램은 지나온 기록의 흔적이 속상하고 고통스러울 경우 더욱 강렬해진다.  
 
김경호, <자살 권하는 사회>, <<우리 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46-248쪽.  
정명중 외저, <<우리 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46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