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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간지옥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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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하이데거를 전공한 한 시간 강사가 자살하였다. 독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계속되는 임용의 좌절과 최저 생계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시간강사로서의 삶은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뛰어난 학술 성과로 촉망받던 연구자였다. 그러나 지식인으로서 최소한의 자존마저도 지킬 수 없게 만드는 부조리한 현실과 전망 없는 미래는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지천명의 나이에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한 지식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의 아내는 “모두가 잠든 깊은 밤, 홀로 몇 시간이고 앉아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곤 했어요.”라고 남편을 기억한다. 2012년 3월, 출구 없는 해고 노동자 한 사람이 23층 임대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하였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였던 그는 회사의 회생을 위해 고통을 분담하고 희생을 감당했지만 끝내 해고된다. 그래도 회사의 약속을 믿고 복직을 기다리던 중 생계를 위해 재취업을 시도하였으나 ‘쌍고자동차 해고노동자’라는 낙인은 그의 재취업조차 봉쇄한다. ‘해고는 살인’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유령과 같은 자본에 의해 낙인찍힌 36살의 한 노동자는 그렇게 삶을 봉쇄당하고 자살을 택하고 만다. 2011년 12월, 동료 또래들에게 집단적으로 폭행을 당했던 한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중학생이 가한 폭력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비인간적인 학대와 물고문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학교폭력과 그러한 희생자를 예방하기 위해 기성사회가 요란스럽게 마련한 대책은 ‘처벌의 강화’이다. 그러나 처벌이 강화된다고 ‘학교 폭력’과 ‘학교폭력 희생자의 자살이 줄어들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너와 나라는 타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교육 대신에 성적의 서열화와 ‘강한 자’만을 치켜세우는 학교 현실은 오늘도 청소년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무한 경쟁과 물신적인 폭력에 신음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2012년 한국사회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세계 1위이다. 10대 청소년부터 30대의 청장년에 이르는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60대 이상 노년층의 자살도 점증하고 있다. 청소년에서 고령의 노인에 이르기 까지, 연예인에서 미취업 젊은이들, 사회적 약자로 전락한 사람들, 생활고에 힘겨워 하는 가장들에 이르기까지, 연령이나 계층을 불문하고 한국사회의 자살은 일상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다. 화려하게 화장한 사회적 기제들은 살만한 세상을 홍보하지만 술 권하는 사회의 잔혹함은 교묘하게 은폐되어 더 이상 술조차 마실 수 없게 만든다. 강요된 고통과 슬픈 현실의 뒤안에서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서성인다. 용산에서 “여기 사람이 있다.”고 소리치던 사람들이 화염 속에 사라져 가도, “함께 살자”고 외치던 사람들이 투신하여도 불감한다. 유동하는 잔혹한 기생자본이 넘쳐나는 한국사회는 그래서 타인의 죽음에 무감각하다. 사회적 죽음마저도 그저 신문 사회면의 몇 자 활자로 머물렀다 사라져 버린다. 넘쳐나는 죽음을 숫자로 계량화하는 물신적 감각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성찰을 잊은 지 오래다. 술을 넘어 자살을 강박하는 비정한 사회이다.  
 
김경호, <자살 권하는 사회>, <<우리 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44-246쪽.  
정명중 외저, <<우리 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44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