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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데를 가서 이때껏 오시지 않아!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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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는 1920년대, 식민 조선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의 일상을 보여준다. 동경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이후, 남편은 몇 달은 어디인지 분주히 돌아다닌다. 어느 때는 집에 오면 정신없이 무슨 책을 보기도 하고, 또 밤새도록 무엇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몇 달은 출입을 뚝 끊고 늘 집에만 붙어 있기도 한다. 제대로 먹지도 않는가 하면, 어느 밤에는 책상머리에 앉아 흐느껴 울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출입이 잦아들고, 밤이 늦도록 남편은 돌아오지 않는다. 술이 취한 남편이 들어오자 화가 난 아내는 누구와 술을 마셨는지 따져 묻는다. 남편은 자신이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한다. “자세히 들어요.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홧증도 아니고 하이칼라도 아니요,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이 조선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이런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한단 말이오. 하려는 놈이 어리석은 놈이야. 정신이 바로 박힌 놈은 피를 토하고 죽을 수밖에 없지. 술밖에 먹을 게 도무지 없지. 나도 전자에는 무엇을 좀 해 보겠다고 애도 써 보았어. 그것이 모다 수포야. 내가 어리석은 놈이었지.”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할 수 없는 식민의 시대에 강요된 억압과 굴종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은 육신과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다. <술 권하는 사회>의 남편과 같은 위약한 사람들은 단지 ‘술밖에 먹을 게 도무지 없다’는 상황에 직면한다. 나약한 자기에게 분노하다가도 비겁하게 현실과 타협하고, 그래서 죽지 않기 위해 술을 마신다. 술기운이 떨어지면 죽을 것만 같기에 연일 술을 마신다. 술을 깨기 전에 다시 술을 마시는 참담함은 소설보다 현실에서 더 생생하고 일상적이다. 현진건은 동경 유학을 하고 돌아온 당대 엘리트 중의 한 사람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 수 없는 슬픈 현실을 그려낸다. 매일 만취해서 늦은 밤 귀가하는 고통스런 풍경은 당대 식민을 살던 조선인들의 초상이었다. 1920년대로부터 거의 한 세기가 지난 2010년대, 우리는 자주독립 국가인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분명 한국사회는 전쟁과 가난의 궁핍한 시대를 헤쳐 오면서 땀과 눈물로 산업화를 이루고, 군사독재에 저항한 수많은 이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민주사회를 이루었다. 그러나 자본의 독점적이고 기형적 성장에 기반한 왜곡된 산업화와 체화되지 않은 이식된 형식적 민주화는 한국사회의 심각한 병리적 현상을 야기하고 있다. 우리 시대는 자유, 정의, 진리, 평등, 인권 등의 민주적 가치보다는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하는 물신주의가 만연하다. 흔히 한국사회를 ‘돈만 있으면 정말 살기 좋은 나라’라고 말한다. 이 말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사회는 ‘돈만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고, 못할 것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화수분과 같은 욕망을 낳은 ‘돈’에 목숨을 걸고 ‘강남스타일’로 대표되는 ‘자본과 향락’에 열광한다. 타인에 대한 고려나 공공의 가치보다는 ‘나의 재산과 안위’만을 걱정하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성공만을 추구하는 몰염치한 소시민을 양산하고 있다. ‘사랑과 인정’에 웃고 우는 것이 아니라 ‘돈과 성공’에 웃고 우는 천박한 자본과 무한경쟁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암울한 슬픔과 분노’가 일상에 미만해 있다. 미만한 우울은 일상의 내밀한 곳까지 침투해 오히려 술조차 마실 수 없게 만든다. 무기력하게 술에 취해 귀가하는 남편을 타박하는 아내를 볼 수 있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술조차 취할 수 없는 현실은 삶을 짓누르고 허전함만을 증폭시킨다. 해소할 수 없는 억압과 슬픔은 분노로 격동한다. 
 
김경호, <자살 권하는 사회>, <<우리 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42-244쪽.  
정명중 외저, <<우리 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242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