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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갱이 때려잡기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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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그리고 오랜 동안 빨갱이 만들기와 때려잡기가 행해졌다. 1961년 12월 21일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는 “조총련계 자금을 끌어들여 신문을 창간해 이북 괴뢰집단의 주장에 동조하는 논조를 폈다.”는 이유로 국가재건최고위원회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불과 30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인혁당사건은 그 대표적 사례의 하나이다. 1972년 12월 유신 체제 발족과 1973년 8월 8일에 있었던 김대중 납치사건은 박정희 정부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시위 등을 통한 박정희 정부의 유신 체제에 대한 반대운동이 본격화된 것이다. 1974년 4월 3일 저녁 박정희 대통령은 “민청학련이라는 지하조직이 불순세력의 배후조종 아래 사회 각계각층에 침투해 인민혁명을 기도한다.”는 요지의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을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학생을 주축으로 한, 정부를 전복하려는 불순 반정부세력”으로 규정했다. 이와 관련하여 긴급조치 및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1천 24명이 영장 없이 체포되었다. 5월 27일 비상보통군법회의 검찰부는 민청학련의 배후에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가 있으며, 이들이 인민혁명당을 재건해 국가전복 활동을 지휘했다고 발표했다.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은 대부분 1975년 2월 15일 대통령특별조치에 의한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같은 해 4월 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사건 관련자 23명 중 서도원 등 8명에게는 사형, 김한덕 등 7명에게는 무기징역, 나머지 피고인에게는 징역 15~2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4월 9일 새벽 사형 선고를 받은 8명은 사형 판결이 확정된 후 불과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사건 관련자들이 2007년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김창규, <분단과 전쟁의 상흔>,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65-66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65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