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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공의 생활화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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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과 전쟁이 개인에게는 분명 슬픔이었지만, 국가는 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활용했다. 전쟁은 공산주의자들의 탓으로 돌려졌고, 국가는 그 기념을 독점하면서 특히 반공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1950년대 남한의 공적 담론의 장에서 반공 이외의 어떠한 정치적 지향, 곧 혁신주의나 중도주의적 가치는 존재할 수 없었다. 오직 하나의 주의와 이념만이 절대적 가치로 인정되고, 국가와 사회에 대한 어떠한 대안적이고도 훌륭한 담론도 배제되었다. 1956년 진보당 사건과 1958년 조봉암의 형 집행은 그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승만 정권 하에서 모든 교과서는 물론 일반서적에 빠짐없이 ‘우리의 맹세’가 인쇄되어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 딸,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킨다.” “우리는 강철같이 단결하여 공산침략자를 쳐부수자.” “우리는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휘날리고 남북통일을 완수하자”고, 대한민국의 아들과 딸들 모두가 외어야 했다. 1961년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세력은 첫 번째 혁명공약으로,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정비ㆍ강화한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보다 완벽한 반공주의 국가로 진화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이루기 위해 ‘멸공’은 시대정신이 되었으며 공산주의는 해충과도 같은 박멸의 대상이었다. 사회 모두가 병영화 되고 반공이데올로기가 내면화 되었다. 삶터와 직장 모두가 ‘전선’이고 반공적 삶이 곧 인생의 보람이 되었다. 병역 의무를 마친 대한의 건아들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직장마다 피가 끓어 드높은 사기 총을 들고 건설하며 보람에 산다. 우리는 대한의 향토예비군. 나오라 붉은 무리 침략자들아 예비군 가는 길에 승리뿐이다.” “안보의 용사들이 굳게 뭉쳤다.” “일편단심 뜨거운 핏줄 철통같은 제2전선 힘이 넘친다.” 반공이라는 구호 속에 국민 동원은 예외가 없었으니 신성한 학원마저 병영화 된다. 유신시기 학도호국단의 모습이다. 대개의 학도호국단은 비국민적 행동 등 모든 부조리를 민족의 이름으로 처벌함으로써 안보체제를 더욱 굳건히 해 멸공통일을 기필코 달성하겠다고 결의를 했다. 학도호국단의 편성과 교육 실태는 군대와 매한가지로 열병과 분열을 통해 점검했다. 그 뒤 총검술, 각개전투, M1, M16 및 기관총 분해결합 등을 했다. 남학생은 베레모에 호국단 마크를 부착한 교련복을 착용했으며, 여학생은 역시 베레모에 흑색 스웨터 백색 하의에 구급낭을 맸다.  
 
김창규, <분단과 전쟁의 상흔>,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64-65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64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