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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단이 낳은 슬픔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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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우리는 해방을 맞이하였다. 우리에게 축복이었으나 동시에 제대로 된 국가를 건설해야할 사명을 안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냉전의 최전선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의 지도자들과 정치세력들은 협력 대신 갈등과 대립을 거듭했다. 해방 후 한국사회의 이념적 지형에서 반공은 절대적 지위를 차지했다. 상식적으로 우익이 민족주의여야 했으나 당시는 그러지 못했다. 일제시대에 친일파로서 투항하거나 매국을 했기 때문에, 이들은 민족보다는 반공을 생존의 논리로 내세웠다. 반공으로서 모든 것을 정당화했으며 반공할 내용이 없으면 심지어 용공분자를 만들어 내기까지 했다. 반공은 마치 유일한 생명선과 같았다. 해방공간에서 신탁통치를 둘러싼 갈등은 좌익과 우익을 확연히 가르게 했고, 이와 함께 극우세력한테 정체성을 부여했다. 극우세력은 이를 통해 반소반공운동의 명분을 확보하여 일반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시켰다. 반탁의 논리는 1946년 1월 이후 특히 지방에서 좌익을 꺾는 데 중요한 명분으로 지속적으로 활용되었다.(서중석, <<한국현대민족운동사연구>>) 상호를 적대시하는 극한적 대립에서 우익이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반공을 전유했다. 해방 이후 정치는 미군정과 우익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겉모양만 바뀌었을 뿐 식민지시기에 비해 내용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분단국가가 형성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잠재적인 적들에 대한 감시와 처벌은 더욱 강화되는 경향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국가보안법이 제정되었고, 뒤 이어 보도연맹이 조직되었다. 그것의 결정적 계기는 1948년 여순사건이다. 김득중에 따르면, 여순사건의 핵심적 의미는 ‘빨갱이의 탄생’이었다. 여순사건 때 등장한 공산주의자=빨갱이=살인마=악마라는 등식은 좌익을 인륜을 저버린 비도덕적 존재=인간 이하의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었다. 좌익은 이제 같은 민족이 아니며 같은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는 비국민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면서 빨갱이는 공산주의자를 지칭할 때 쓰는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다. 빨갱이는 단지 공산주의 이념의 소지자를 지칭하는 낱말이 아니었다. 빨갱이란 용어는 도덕적으로 파탄 난 비인간적 존재, 짐승만도 못한 존재, 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를 천하게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때문에 공산주의자는 어떤 비난을 하더라도 감수해야만 하는 존재, 죽음을 당하더라도 마땅한 존재,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존재, 죽음을 당하지만 항변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김득중, <<빨갱이의 탄생>>) 지나간 과거를 바로 잡고 민족의 현실과 장래를 걱정하였던 이들에게도 빨갱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만 하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빨갱이라는 단어만 붙이면 형제관계, 부자관계, 사제관계도 파탄이 났다. 그래서 그들은 국가와 사회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배제된 채 파괴자 혹은 반역자로 낙인찍혔다.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빨갱이는 적용되었다. 형은 빨갱이고 동생은 빨갱이 때려잡기에 앞장서야 하는 비극이 속출했다.  
 
김창규, <분단과 전쟁의 상흔>,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58-60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58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