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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을 어디다 다 할꼬?”

애(哀)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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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이 끝났다. 살아남은 일본군 대부분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일본군의 성노예였던 군위안부는 패전에 즈음에서 여러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거나, 전쟁터에 그대로 버려졌다. 1944년 2월 20일 트럭섬의 경우, 미군의 대공습 후 일본 군인이 위안부들을 국가의 수치라고 해서 집단 사살했다. 해방을 맞이했으나 심한 병이 들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이거나 귀국방법을 몰라 타국 땅에서 떠돌다가 현지에 남기도 했다. 또한 위안부였던 과거 때문에 고향에 갈 수 없다고 해서 귀국을 포기한 사람들도 있었다. 다행히 주위의 조선인 또는 현지인의 도움으로 귀국하거나, 연합군이 점령한 필리핀, 인도네시아 같은 지역에는 연합군 수용소에 있다가 귀국선을 탄 조선인 군위안부도 있었다. 김순악은 “중국 땅에서 밤낮 없이 걸었어. … 8월 15일부터 구월 한 달을 걸어, 걸어서 잠자리는 헛간 같은 데 잠잤고 … 빗자루 하는 수수, 그것을 삶았는데, 삶아 가지고 물에다가 갈아주더라고. 막 배가 고파 못 견디는데, 그것을 꾹꾹 씹어. 물이 입으로 넘어가지 않고 … 다 그렇게 살았다고. 정말로 살아서 한국에 나올라고.”(증언자료집, <<그 말을 어디다 다 할꼬>>) 납치되고, 능욕당하고, 두들겨 맞고, 소모되고, 병들어 죽고, 살해당하고, 버려지고, 쫓겨나고, 그렇게 하고 나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여성들이 지치고 병든 몸으로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당시 피해 여성은 대부분 결혼 적령기였지만, 결혼하는데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다. 군위안부 피해 경험 때문에 결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혼자 살거나 후처, 첩 등이 되었다. 상당기간 이들은 자신들의 슬픔과 분노를 해소할 수 없는 수동적 피해자였다. 해방이 되었고, 일본군으로부터 풀려났지만 이들의 트라우마는 지속되었다. 피해 여성들은 군인들의 폭력, 폭행, 협박과 더불어 전쟁지역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경험했다. 육체적 후유증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정신적인 후유증의 대표적인 사례가 대인공포증, 정신불안, 두려움, 우울, 무력감, 남성기피증, 증오감 등이다. 정서운은 “다시 태어나서 무엇이 되었으면 좋게다 하는 그런 마음은 없어. 이 세상사는 게 너무 허무하고 너무 가시밭길을 걷고 그리 살아왔는데 내가 나중에 다시 태어나서 무엇을 할 게 있을까. 내가 살아남은 게, 가만히 지금 생각해보면 꿈 같애. 꿈이라도 너무 험한 악몽이라.”(증언자료집, <<그 말을 어디다 다 할꼬>>) 정상적인 감성을 억제하는 슬픔과 트라우마는 해소되어야 한다. 하지만 상당기간 그렇지 못했다. 피해자 여성의 증언자료집 가운데 <<그 말을 어디다 다 할꼬>>가 있다. ‘그 말’은 전시체제기 그들이 겪었던 삶의 행적에 관한 증언을 말한다. 그리고 “어디다 다 할꼬”에는 그동안 어디에도 말할 수 없어서 내면에 감추어 두었으며, 다하지 못했음을 말한다. 피해 여성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한 것은 일본정부의 반응이었다. 
 
류시현, <망각을 일깨우는 낮은 목소리>,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49-51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49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