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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치와 유괴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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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여성들의 강제 동원에 민간업자뿐만 아니라 마을 이장, 면장, 면사무소 직원이 적극 나섰다. 1994년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 여성 157명 가운데 51명(32.4%)이 경찰 또는 관리에 의해 연행되었다고 증언했다.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역할을 했던 <<매일신보>>와 <<경성일보>>도 이러한 활동에 적극 협력했다. 1944년 하반기 <<매일신보>>에는 “군위안부 급히 모집”이라고 하는 광고가 허씨라는 개인 모집업자의 이름으로 실렸고, <<경성일보>>에는 직업소개소 명의로 “위안부 대모집”이란 광고가 실렸다. 아울러 피해 여성의 납치에 경찰과 군이 개입했다. 대구 출신인 16세 문옥주는 친구 집에서 놀다가 저녁 무렵 집에 돌아오는 길에 헌병에 의해 다짜고짜 헌병대로 끌려 갔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끌려온 다른 소녀와 함께 ‘인솔자’에게 넘겨졌다. 부산 출신인 16세 윤두리는 경찰에 의해 경찰서 안으로 납치당했다. 그날 밤 군용차를 끌고 온 헌병 2인에게 넘겨졌다. 강순자(가명)는 14살 때 동네 방송으로 모이라는 말을 듣고 나갔더니 “동네 여자들을 쭉 한 줄로 세워놓고 쌀가마 무게를 재는 저울에 몸무게를 달았어. 거기에서 무게가 좀 나가는 실한 여자들은 바로 트럭에 싣더라고. 방앗간 앞에는 총을 찬 군인도 있고, 한국 사람도 있었어. 일본 군인이야 여럿이 있었지. 민간인도 있었고, 그것이 다 차 타라고 하고 끌어올리고 그랬어.”(증언자료집, <<그 말을 어디다 다 할꼬>>) 전쟁지역에서는 일본군이 직접 여성을 납치·유괴하기도 했다. 인도네사아의 경우 우리의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00명의 피해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고 그 가운데 760명이 회답했다. 그녀들이 군위안부가 된 이유는 첫째, 사기가 45% 둘째, 가족을 살해하겠다는 위협이 45% 셋째, 납치와 유괴 등의 경우가 10%였다. 이들 역시 일본군의 사기와 폭력에 의해 강제 연행된 피해자였다. 
 
류시현, <망각을 일깨우는 낮은 목소리>,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44-45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44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