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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장군(呂將軍) 넋을 달랜 이서구

애(哀)
긍정적 감성
구비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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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전에 어딜 갔는고 하니 저 경상남도 함양 휴천면 목골이라는데 목골이라고 한델 갔었, 갔었습니다. 거 갔었는데 그 목골에 가면 어느 어느 묘가 있는고 하니 함양 여씨의 그 여불, 여장군이라고 하는 묘가 있습니다. 그것을 뭐라고 얘기하는고 하니 거기서는 노서하전(老鼠下田)이라고 합니다. 늙은 쥐가 밭에 내려온 형상이라고 해서 노서하전이라고 하는데 그 묘에 대한 얘기를 내 좀 잠깐 하겠습니다.
예전에 그 고려 땐데 어느 땐가는 노서하전형. 그 고려 땐데 아마 그가 어- 거기서 어느 큰 난리 때에 작 작고를 하고 이런 후에 전에는 아마 묘도 안하고 안하고 결국은 제사도 안 지내고 이렇게 해서 그것이 아마 원귀가 됐더랍니다. 그래서 함양 그 부사라고, 떡 함양 고을해서 보내면은 고만 그 원이 도임하는 날 죽-고 죽-고 한단 말야. 한번 보내면 도임하던 그 담날, 도임할 것 같으면 그 이튿날만 될 것 같으면 지낼 것 같으면은 죽어서 그냥 죽고 죽고 한단 말이야.
아 그러다 보니까 그만 하나 그랴, 둘 그랴, 셋 그랴. 아 그 함양부사만 보내면 그냥 죽고 그냥 말으니 말야 나중엔 결국은 함양도임은 폐지될 지경이란 말이여. 그때 마침 어느 땐지 몰라도 이서구라는 그 전라감사까지 지낸 이서구 그 양반이 있는데, 이서구 그 양반이 내직으로 있을 판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함양고을은 폐지될 지경이고, “에이 이거 내가 기왕이면 가서 어떤 거 어떤 관계루다가 이렇게 도임하면 죽고 죽고하니, 내가 가서 한번 그 함양부살 해보겠다.” 구 자기가 자원했어. 자원하구서 함양부사 떡 갔다. 이서구 그 양반이 참 거기를 갔더랍니다. 갔는데 가가지구서 그 장삿꾼한테 시켜서, “그 황초를 있는대로 좀 어떻게 좀 거둬내라.”말이여, 첫 번 명령에. 그래 그 황초를 전부 이 초를 장만해 가지구선 양 저 지동(기둥)에다가 인저 마루에다가 그저 문턱에 이런데다가 아, 초를 그저 막 밝히고 이럭하구서 인저 그날 저녁에 떡 동헌에 앉아서 인저 이 있단 말이여. 부임, 그 부임하던 날 있는데 아 그 한 한밤중쯤 돼서 한 그때 삼경이 지나서 한 사경쯤 됐는데 한밤중 쯤 됐는데, 아 그 난데없는 그 창안을 불이 번쩍번쩍 그 번쩍거리더니 반짝거리긴 하구, 그 아주 청아하게 불각(不刻)에 검은 구름이 그냥 뭉게뭉게 뭉게하구 모여들더니만은, 그냥 어스름한 바람이 불 불더니만 모진 광풍이 그냥 불더니 나뭇가지가 흔들거리고 그냥 대문이 그냥 들짝날짝 들짝날짝하고 아 이렇게 되거든. 시-그 가만히 보니 참 이상시럽단 말이여.
그러더니 막 한참 뭐라더니만 그 동헌문이 문이 열렸다 닫혔다하면서 덜컥더럭하고 이 이라거든, 점점. 어쩐지 자기 맘으로 생가하니까 그 불은 전부 다 그러니까 인저 불은 꺼지고 황촛불도, 촛불이 인제 꺼지고 막 이럭하는 판인데 어쩐지 자기도 생각에 으씰한 생각이 나면섬 싫은 생각이 난단 말이여. 그러더니 얼마 있더니만 그 바람이 잠잠하게 자고 그 구름이 조금 벗겨지면서 지면서 우글우글 이렇게 되더니만, 그런 후에 어떤 대장이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장창을 들고 아주 이렇게 들어오는데 보니까 키가 그냥 구척장신이고 이런데 얼굴은 마련않지. 기가 멕혀서 원청(워낙) 엄하게 장엄하게 생겨서 당최 바라보기가 엄하고 이렇게 무서운 장군이 들어오거든. 그 들어오거든. 들어오더니 턱 마루에 올라 올라오면서 턱 있으니께 자기도 모르게 이서구 그 양반이 자릴 비켰어. 게 그 자리르 턱 자기가 앉더니만은, “음. 나한테 인사해라.” 하구선 절을 하라구 하드랴. 그래 절을 했어, 이서구 이 양반이. 절을 하구나니까, “음 오늘이야말로 참말로 명관을 만났다 말여. 아 이 못생긴 것들이 함양부사를 왔다고해서 내가 좀 소원이 있어서 소원풀이를 할랴구 말할랴구 하구 하구 그럴 것 같으면은 그만 겁이 나가지구서 그 질루 그만 기절해 죽고 죽고 해서 여태까지 저 소원 소원 얘길 못하구 그랬는데, 오늘이야말로 참 명관을 만나서 내가 이젠 소원을 내가 풀게 되었으니 참 내가 음 오늘이야말로 참 퍽 그 반갑기가 짝이 없다.”고 아 이 소리를 하거든. “그럭겠다. 게 무슨 소원이 있어서 이렇게 그런 그렇게 하십니까?”말이여. “소원은 다른게 아니라 이 함양서 남방 10리허에 목동이라는 동네가 있어. 목동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나는 고려 때에 고려 때에 어느 난리에 왜적을 만나가지구서 여기서 죽었어. 그런데 내가 데리고 있던 그 저 병졸들이 다 죽고 나 역시 죽었어. 내 역시 죽었는데 결국은 이럭하다 보니께 기걸(飢渴)이 자심해 기걸이 자심해. 결국은 내 무덤이지만 허물어져 가지구서 저 백골이 말짱 나올 지경이니 지경이여 그리구 기걸이 자심햐. 그래서 함양부사한테 이런 얘기를 좀 해서 내 무덤을 좀 다시 어떻게 중축을 하고 좀 제사를 좀 지내 줄 것 같으면은 내 데리고 있던 그 부하장졸 저 병졸들이 좀 기걸을 면하고 이렇게 하도록 할 것 같으면 될상 싶어서, 그걸 소원을 풀어달라고 얘기를 할려고 하면 죽고 죽고 해서 그랬는데 오늘은 좀 들으니까 그렇게 해주겠느냐?” 고. 그걸 얘기하거든. “게 묘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께, “남방 10리 허에, 함양서 남방 10리 허에 목 목동이란 목골이란 동네가 있는데 거기에 내 묘가 있다.”고. 여, 여장군 묘가 있다고이러더라고. 나는 여불이라고 하면서, “그럭겠다”고 말여. 아 그 질루 인제 참 인저 보니까 아 이 함양 아전들이 이너 또, “인제 이 신임 사또가 왔는데 또 죽었으리라.” 하구서 아 식전에 꺼적을 가지고 들어오거든. 보니깐 죽긴. 왜 죽어. 싱싱하니 그냥 있단 말이여. 그런 후에 육방관속을 불러놓구서, “느덜 내가 노인잔치를 할 테여. 그러니께 저 이함양고을에 노인들을 식자가 있고 좀 지방에 오래 살고 그 지방의 유래도 좀 대충 짐작하는 사람들이 있걸랑은 전부 노인들을 좀 불러라.” 말이여. 이래가지구서 인제 참 술도 받고 돼지도 잡고 이래가지구 노인잔치를 하면서 그 얘길했어. “여기 남방 10리허에 목골이라는 동네가 있느냐?” 고 말여. “있다.”고. “거기 이 혹시 여불, 여장군 묘라고 하는 것을 있는걸 아느냐?”고. “안다.”는겨. “아 그럭겠다.”고 말여. 아 그 질루 참말로 그 여장군, 여불이 여장군 묘를 다시 인제 삽질을 하고 위토를 장만하구 아 이래가지구서는 참 덩그랗게 참 인제 그 잘해 놓고 석물도 하고 그랬단 말이여. 아 그런 후에는 고만 함양고을이 잠잠하니 아무 탈, 탈도 없이 매년 풍년이 들고 매년 재앙도 없고 잘 되드랴. 그래서 지금도 역시 거기 그 함양에, 그 저 함양여씨의 그 여불이 여장군 묘는 초헌관이 누가 되는고 하니 함양군수가 . 그래가지구서 지금까지두그 위토답이 8십마지기라던가? 묘 앞에 위토, 위토가 8십마지기구 그 재각도 그 저 그 함양고을에서 관 관리를 하고 이렇게 해서 지내온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 실지루 우리 가봤어. 가 봤는데 묘두 좋데. 그 함양군 휴천면, 쉴 휴 자, 내 천 자. 목골이라고 하는 동네여.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목골이라는 곳에 함양부사로 오는 사람마다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이서구가 함양부사로 발령받아 가니, 밤에 죽은 이서구 혼령이 자신의 묘를 새로 조성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계속 나타났으나, 하나같이 담이 약하여 죽었다고 한다.
그날 밤 스산한 분위기에 죽은 여장군이 나타나 자신의 묘가 붕괴직전이기에 새로 조성해달라고 부탁한다. 이서구는 여장군의 넋을 위로하면서 묘를 찾아서 새로 조성해 주었다.
원한을 풀고자 하는 기대감과 이를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 슬픔의 원인이 되고 있으나 비탄의 심경은 부사의 정의감과 용기를 통해 해소되고 있다. 
김영진, 『한국구비문학대계』, 3-4, 충청북도 영동군 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184-188쪽. 
김영진, 『한국구비문학대계』, 3-4, 충청북도 영동군 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