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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덕영과 윤비

애(哀)
부정적 감성
구비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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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 역사에…그래 인제 저기 교문리, 그-거 들어가믄 거기 등룡동이라구 있에요. 등룡동. 술 도가 있는 데서 건너쪽에. 거가 등룡동이에요. 그 윤덕영씨네, 그 거기 그 부원군 산소가 그거 있는데…, 그래 인제 신황제 배우가, 왕후가 민씬데, 민중전 님에 에-친정 조카 따님이 인제 또 메누리가 돼 들어왔는데, 인제 작고허구, 나라에서 이 재추(再娶)루 그 윤덕영씨네 집이서 인제 그 윤비가 참 인제 들어가셨는데, 그래 인제 친정 아버지가 인제 그 나라에 인제- 궐내에 인제 참 들어갔더니, 참 뭐 나라 기구니 거 반찬이 뭐 뭐 뭐 몇 첩 반찬인지 수가 없지 않우? 그래 인제 이렇게 반찬을 차리구 인제, 참 좋은 괴기국을 인제 미역국에다 끓이구, 뚜겔(뚜껑을) 덮구 모두 모두 전부 했는데, 아 밥숟갈, 밥-밥사발을 뚜껑을 여니까 빈 사발이구려. 주발이 말이지. “아부지, 나 이런 데다 노셨에요?” 신황제가 병신이라 그 말야. 신(腎)이 없어, 신이. 그 신이- 그 신이 없다구, 고자라구. 그래 허공에다 놨다는 게야. 그래서 그겄이가, 그래서 그분이 그게 뭐, 그냥 수절허다 돌아가신 분이라구, 그래서 그렇게 된 거야. 그래 그 나라 역사가 그런데, 그 내용이 아마 그 민중전께서 그 아드님을 그 신황제를 아마 그 신을 건드렸단 말두 들리구…잘 모르겠어요. 
명성황후가 죽은 후 신황제의 왕비로 윤덕영의 딸이 간택되었다. 궐에 들어간 윤비는 그녀의 아비인 윤덕영을 불러 같이 밥을 먹었다. 윤비는 한 나라의 손을 낳을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신황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기에 윤비는 아버지에게 원망을 내비쳤다. 자손을 잇고 싶어도 이을 수 없는 처지에 대해 하소연을 하였다는 이야기다. 처지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슬픔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비탄의 심경은 해소되지 않은 채 엉키고 있다. 
조희웅, 『한국구비문학대계』 1-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1, 661-662쪽. 
조희웅, 『한국구비문학대계』 1-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