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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우제에 쓰는 향에 착오가 있어 세종이 노함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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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원문]숭덕 대부(崇德大夫) 이정녕(李正寧)을 명하여 흥천사(興天寺)에서 비를 빌었다. 흥천사의 기우제는 으레 내의원(內醫院)의 백단향(白檀香)을 쓰는데, 이날 좌부승지 이사순(李師純)이 향실(香室)의 향(香)으로 봉하여 전하였더니, 임금이 노하여 두세 환자를 시켜 서로 힐난하고 책망하기를 거의 6, 7차나 한지라, 사순(師純)이 아뢰기를, “우부승지 이계전(李季甸)이 일찍이 이를 주장하였는데, 오늘 병으로 물러갔기 때문에 착오가 되었나이다.”하니, 임금의 노여움이 조금 풀리어 말하기를, “내가 생각하기를, 계전이 스스로 유자(儒者)라 하여 여기에 마음을 쓰지 않았는가 하였기 때문에 책망한 것인데, 병으로 나갔음을 이제 알았노라. 도승지(都承旨)는 왜 검사하지 못하였는가. 이것은 나의 사사일이 아니다.”하고, 곧 수양 대군(首陽大君) 이유(李瑈)를 명하여 내향(內香)을 받들고 흥천사에 가게 하였는데, 이유가 합장(合掌)을 하고 몸을 흔들며 불탑(佛塔)을 돌고, 또 대감 감찰(臺監監察) 하순경(河淳敬)을 강제로 역시 자기와 같게 하니, 순경이 늙고 겁이 난지라, 할 수 없이 그대로 따랐다.
이에 이유와 도승지(都承旨) 이사철(李思哲) 이하가 모두 중들로 더불어 한데 섞이어 주춤거려 뛰면서 여러가지 이상한 짓을 갖추갖추 하였다. 불당(佛堂)을 세운 이후로부터 매양 불사(佛事)를 행함에는 늘 이와 같았다. 이 모임에 임금이 고기반찬을 끊고 중들을 공급하는 것이 전보다 갑절되게 하여 내관(內官)을 명하여 보살피게 하고, 내자(內資)·내섬(內贍)·예빈(禮賓)·도관(導官)으로 하여금 그 수요(需要) 되는 것을 마음대로 공급하고, 또 내옹(內饔)을 시켜 찬(饌)을 맡게 하여 극히 호화 사치하게 하였다. 요전에 예조 좌랑 김장춘(金長春)이 기신재(忌晨齋)를 감독하는데, 수양 대군이 장춘더러 부처에게 예를 하지 않는다 하여 꾸짖어 욕한 일이 있었는데, 그뒤로부터 부처에게 예를 하지 않는 자가 없으나, 그러나, 대감(臺監)으로서 부처에게 예를 하기는 순경으로부터 시작하였다. 
흥천사(興天寺)에서 비를 빌었다. 흥천사의 기우제는 으레 내의원(內醫院)의 백단향(白檀香)을 쓰는데, 이날 좌부승지 이사순(李師純)이 향실(香室)의 향(香)으로 봉하여 전하였다.
세종이 노하여 두세 환자를 시켜 서로 힐난하고 책망하기를 거의 6, 7차나 하였다.
세종은 이사순(李師純)에게 전후 사정을 듣고 화를 풀었다. 즉, 우부승지 이계전(李季甸)이 일찍이 이를 주장하였는데, 병으로 직접 참여하지 못하연서 착오가 생겨난 것이었다. 세종은 이사순의 설명을 듣고서 말하기를 “내가 생각하기를, 계전이 스스로 유자(儒者)라 하여 여기에 마음을 쓰지 않았는가 하였기 때문에 책망한 것인데, 병으로 나갔음을 이제 알았노라.” 하며 화를 풀었다.
세종은 이계전이 아니더라도 도승지(都承旨)가 있는데 왜 이를 검사하지 않았는지를 물으며, 기우제는 결코 개인적인 일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수양 대군(首陽大君) 이유(李瑈)에게 명하여 내향(內香)을 받들고 흥천사에 가 기우제를 하게 하면서 그의 화는 해소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세종 124권, 31년(1449 기사 / 명 정통(正統) 14년) 6월 5일(계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