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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의 상황을 궁핍하게 하는 호조판서 이명에 대한 지평 이인의 분개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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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헌 남이웅(南以雄)이 아뢰기를, “어제 장령 유준창이 피혐한 말을 보니, 지평 이인이 보낸 편지에 ‘왜 꼭 장관을 기다릴 필요가 있느냐.’는 등의 말이 있었으니, 이는 신이 남에게 매우 가볍게 보인 소치인데, 어찌 감히 그대로 자리에 있겠습니까.”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지평 이인이 아뢰기를, “신이 시사(時事)를 직접 눈으로 보고 구제할 수 없음을 걱정하였는데, 백성을 괴롭히고 나라를 좀먹는 정사가 모두 호조에서 나오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일찍이 분하게 여기어, 인피하는 말에서 그 생각했던 것을 대략 진술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함으로써 도리어 부당하게 여기시는 전교를 내리시게 되었으니, 신은 진실로 황공하고 위축되어 말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대체로 이명이 나라의 부고(府庫)를 채운 것은 모두가 백성을 괴롭히고 원망을 쌓아서 이룬 것이고 보면, 이것은 옛사람이 이른바 ‘살을 베어서 배를 채운다.’는 것입니다. 거두어 들이기만 하는 신하로도 충분히 나라를 망칠 수 있는 것인데, 더구나 거두어 들여서 자기 소유로 삼는 자이겠습니까. 만일 이명을 삶아 죽였는데 백성이 기뻐하지 않는다면, 신은 남을 무함한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신이 이명과는 일찍이 은혜도 원망도 없는 사이이니 맹렬하게 공격한다는 하교는 더욱 신의 본의가 아닙니다. 이는 모두가 신이 군부(君父)에게 신용을 받지 못한 소치이니, 결코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하고, 장령 유준창·이시만, 지평 이제형이 서로 이어 인피하니, 모두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호조판서 이명이 나라의 재정을 맡아보면서 공권(公權)을 팔아 사욕(私慾)을 성취하고, 제멋대로 위세를 부린 것에 대해 지평 이인이 분개하였다.
지평 이인은 계속적으로 상소를 하며 이명을 맹렬히 공격하며 자신의 사직을 청하였다.
지평 이인의 계속된 상소로 인조 22년(1644) 10월 9일 호조판서 이명은 체차되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인조 45권, 22년(1644 갑신 / 명 숭정(崇禎) 17년) 9월 21일(병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