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DB에서 검색하고자 하는 내용을 입력하고 를 클릭하십시요.


   구다카지마(久高島)의 유래와 방귀를 뀐 오미타루(思樽)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내용보기

옛날에 다마구스쿠 군(玉城郡) 햐쿠나 읍(百名邑)에 한 남자가 살았다. 어릴 때 이름은 시라타루(白樽)였다. 천성이 효성이 지극하고 조신하였다. 어질고 의로웠으며 늘 좋은 일을 하고 함부로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다마구스쿠의 아지(按司)가 그를 매우 칭찬하며 장남인 멘톤(免武登能) 아지의 딸을 그와 결혼시켰다.
하루는 시라타루 부부가 함께 들판에 나가 산을 오르며 경치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자 문득, 동해 가운데 한 작은 섬이 파도 사이에 있는 것을 보았다. 시라타루는 이를 매우 괴이하게 여기고 때때로 그 들판으로 나가서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구름이 없는 맑은 날에 바람이 잦아들고 파도가 잠잠해지면 섬이 뚜렷하게 보여서 섬까지의 거리가 가깝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서로 세력을 다투어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시라타루는 세상의 변란에 깊이 염증을 느끼고 바다에 나타난 섬에서 은둔하고자 하였다. 부부가 함께 의논한 끝에 작은 배를 타고 동쪽으로 나아갔다. 잠깐 동안에 그 섬에 도착하였다. 배를 묶어두고 해안으로 올라가 곳곳을 돌아보니 우물물이 감미롭고 땅은 비옥하였으며 들판이 넓고 산이 낮아서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어 살만 했다. 그렇지만 우선 먹을 것이 없어서 해변으로 나가 조개류를 주워서 먹고 살았다.
이 때문에 부부가 함께 이시키도마리(伊敷泊)로 가서 자손이 번영하고 식량이 풍족하게 해달라고 치성을 드렸다. 아직 치성이 다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흰 항아리 하나가 파도에 실려 떠밀려 왔다. 시라타루가 옷을 걷어 올리고 바다로 들어가 그 항아리를 건지려고 하자 항아리가 파도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야쿠루카와(屋久留川)에 가서 목욕재계한 후에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다시 해변으로 가서 소매를 펼쳐 보이며 항아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항아리가 저절로 소매 위에 와 있었다. 아내가 기뻐하며 그 항아리를 잡아 뚜껑을 열어보니 안에 세 종류의 보리[소맥, 하다카무기(葉多嘉麦), 대맥], 세 종류의 조[사쿠와(佐久和), 모치야(餅也), 와사(和佐)], 그리고 한 종류의 콩[속칭 소두(小豆)라 한다]이 들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 종자를 후루마구치(古間口)에 파종하였다. 정월이 되자 보리 이삭이 피었는데 다른 보리와는 매우 달랐다. 시라타루는 이를 매우 기이하게 여기고 그 보리이삭을 왕궁에 바쳤다. 2월이 되어 그 보리가 다 익자 길일을 택해서 공손하게 왕에게 다시 바쳤다. 왕이 매우 기뻐하며 술을 빚어 곳곳에 있는 우타키(御嶽)에 바치도록 하고 여러 직인(職人)들에게 하사했다. 이후 오곡이 풍년들고 자손들이 번성하여 마침내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그 마을을 가리켜서 구다카지마(久高島)라고 불렀다.
장녀인 오토가네(於戸兼)는 노로(祝女)의 직분에 전념하며 각 우타키의 제사를 관장하였다. 장남인 마니우시(眞仁牛)는 아버지의 가통을 이어받았다. 그 자손들이 뻗어나가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호카마 네히토(外間根人)를 맡았다. 차녀인 오미타루(思樽)는 무녀(巫女)가 되어 마침내 왕궁의 무녀로 발탁되어 늘 궁 안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 사람 됨됨이가 정숙하고 용모가 미려하여 보통사람들과는 매우 달랐다. 왕이 오미타루를 내궁으로 불러들여 부인으로 삼았다. 오미타루는 왕의 총애를 받아 마침내 회임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다른 여러 첩들이 이를 매우 시기하여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하루는 오미타루 부인이 실수로 방귀를 뀌었다. 여러 첩들이 이 모습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그 실수를 비웃고 험담하였다. 오미타루 부인은 왕을 모시기가 어렵게 되어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갔다.
잠깐 동안에 여러 달이 흘러 출산 날이 가까워졌다. 오미타루는 왕의 후손을 누추한 곳에서 낳는다면 죄를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고, 별도로 산실을 마련하여 [지금까지도 호카마 네히토의 집에 그 산실이 있다]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름을 가네마쓰가네(金松兼)라 불렀다. 아이가 성장하여 일곱 살이 되자 자주 어머니한테 아버지에 관해서 물었다. 오미타루 부인은 그저 “너는 아버지 없이 나 혼자서 낳은 자식이다.”라고만 대답했다. 아이가 여덟 살이 되어 아버지에 관해서 더 자주 묻기를 “천지만물은 음양의 이치로 나고 자라고 하물며 사람은 모두 부모가 있는 법입니다. 어찌 소자만이 아버지가 없겠습니까? 엎드려 청하오니 아버지가 누군지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재촉했다. 오미타루 부인은 전과 같이 대답할 뿐이었다. 가네마쓰가네가 여러 번 강하게 청을 해도 오미타루 부인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자 가네마쓰가네는 “사람이 아버지를 모르고서는 사람이라 할 수 없으며, 살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차라리 빨리 죽어버리는 편이 낫겠습니다.”하고서 마침내 아침저녁으로 단식을 하며 통곡하였다. 오미타루 부인은 이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겨, 자신이 왕의 총애를 받다가 첩들에게 질투를 받은 일에 관해서 자초지종을 있는 그대로 상세하게 들려주었다. 이어서 “너는 원래 섬 태생으로 입고 있는 옷이나 용모가 왕성의 사람들과는 다르다. 왕을 뵙고자 할지라도 그 뜻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네가 아버지를 물어봐도 일부러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가네마쓰가네는 이 말을 듣고서 배소(排所)가 있는 이시키도마리에 이르러 동쪽을 향하여 “어머니는 왕을 모시다가 소자를 회임하였는데 작은 실수 때문에 병이라 칭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성장하여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천신지기(天神地祇)께 엎드려 바라오니 제 처지를 불쌍히 여기셔서 왕을 알현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라고 매일 아침 치성 드리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자 7일 째 되는 새벽 맑은 날에 황금 덩어리 하나가 크게 빛을 발하며 파도에 실려 떠내려 왔다. 가네마쓰가네가 이를 괴상케 여기고 옷소매를 벌려 건져 올렸더니 황금으로 된 오이 씨앗이었다. 가네마쓰가네는 크게 기뻐하며 그 오이 씨앗을 품에 간직한 채 어머니에게 왕성에 다녀오겠다고 알렸다.
그는 즉각 왕성으로 가서 왕을 뵙고 싶다고 청하였다. 왕성의 관리가 가네마쓰가네의 머리카락이 붉고 입고 있는 옷이 남루한 것을 보고 비웃으며, 어떤 미친 아이가 함부로 왕궁으로 들어가고자 하느냐고 나무랐다. 가네마쓰가네는 용모가 활달하고 위풍당당하여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그저 왕을 뵙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여러 관리들이 이 모습을 보고 이상케 여겨 마침내 상전에게 보고를 하고 왕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가네마쓰가네는 곧장 품속에서 오이 씨앗을 꺼내어 왕에게 바치며 말하기를 “이 오이 씨앗은 나라의 보물입니다. 세계적으로 매우 진귀한 물건입니다. 그런데 때를 맞춰 비를 내리게 하여 비옥한 땅이 젖었을 때에, 아직까지 방귀를 뀐 적이 없는 여자로 하여금 씨앗을 파종토록 한다면 잘 자라서 열매를 많이 맺을 겁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며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방귀를 뀌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가네마쓰가네는 “그렇다면 사람이 방귀를 뀌었다고 어찌 책망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가네마쓰가네를 안으로 불러들여 가만히 그 연유를 물었다. 가네마쓰가네는 그의 어머니가 방귀를 뀐 것 때문에 고향으로 쫓겨나 자신을 낳게 된 경위를 남김없이 말씀드렸다. 왕이 그 사실을 듣고서 가네마쓰가네를 왕성에서 살도록 하고자 하였으나, 동해 작은 섬의 시골 출신인 아이를 곧장 왕자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잠시 고향으로 돌아가 때를 기다리도록 하였다.
그 후 왕에게는 세자가 없었다. 마침내 가네마쓰가네를 불러들여 세자로 책봉하고 왕위를 잇도록 하였다. 이런 연유로 왕이 2년에 한 번씩 구다카지마로 행차하였다. 그리고 해마다 한 번씩 호카마 네히토와 노로가 어중문(御仲門)로 들어가 공손하게 어류를 헌상하였다. 그러면 왕은 노로를 내원(內院)으로 불러들여 성대하게 잔치를 베풀고 차(茶)와 담배 등을 하사하였다. 또한 네히토에게도 관옥(貫玉) 한 쌍을 하사하였다. 강희(康熙) 경자(庚子)년부터 어류를 헌상하는 일이 없어졌다고 전해진다.  
구다카지마(久高島)의 유래를 담은 일본 설화이다. 왕의 총애를 받다가 여러 첩들의 시기로 궁중에서 쫓겨나다. 아들이 태어나서 아버지를 찾는다.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가서 어머니의 억울함을 호소하여 풀어준다. 부자간의 관계가 좋아져서 아들이 왕위에 오른다. 
김용의 역 {유로설전}2010, 전남대학교출판부 
원저 鄭秉哲 외편{遺老說傳}1978, 角川書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