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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흥차사2_아들의 화해 시도(태종)

노(怒)
부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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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興差使 
태종 임금이 된 방원은 아버지의 노한 마음을 돌리려고 수없이 문안사(問安使)를 보냈다. 그러나 태조는 이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다.
그 당시에 문안사가 한 사람도 돌아온 이가 없었다. 태종이 여러 신하에게 묻기를,
"누가 갈 수 있는가"
하니 응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박 순(朴淳)이 자청하여 갔는데, 하인도 딸리지 않고 스스로 새끼 달린 어미말을 타고 함흥에 들어가서 태조 있는 곳을 바라보고 일부러 그 새끼말을 나무에 매어놓고 그 어미말을 타고 나아가니, 어미말이 머뭇거리면서 뒤를 돌아보고 서로 부르며 울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아니 하였다. 태조를 뵈오매, 태조는 말의 하는 짓을 보고 괴이히 여겨 물었더니, 그가 아뢰기를,
"새끼말이 길가는 데 방해가 되어 매어 놓았더니, 어미말과 새끼말이 서로 떨어지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비록 미물이라 하더라도 지친(至親)의 정은 있는 모양입니다."
하고, 풍자하여 비유하니, 태조가 척연(慽然)히 슬퍼하고 잠저(潛邸)에 있을 때 사귄 옛 친구로서 머물러 있게하고 보내지 않았다.
하루는 태조가 순(淳)과 더불어 장기를 두고 있을 때 마침 쥐가 그 새끼를 끼어 안고 지붕 모퉁이에서 떨어져 죽을 지경에 이르렀어도 서로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순이 다시 장기판을 제쳐놓고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더욱 간절하게 아뢰니 태조가 이에 서울로 돌아갈 것을 허락하였다. 순이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태조의 허락을 듣고 곧 그 자리를 하직하고 떠나니 태조를 따라와 모시고 있던 여러 신하들이 극력으로 그를 죽일 것을 청하였다. 태조는 그가 용흥강(龍興江)을 이미 건너갔으리라고 생각되므로 사자(使者)에게 칼을 주면서 이르기를 '만약 이미 강을 건넜거든 쫓지 말라.'하였다. 순은 병이 나서 중도에서 체류하였다가, 이 때에 겨우 강에 도달하여 배에 오르고 아직 강을 건너지 못하였으므로, 드디어 그 허리를 베이었다. 그 때에 '반은 강 속에 있고 반은 뱃 속에 있다'[半在江中半在船]하는 시가 있었다. 태조가 크게 놀라 애석하게 여겨 이르기를,
"박순은 좋은 친구이다. 내가 마침 내 전일에 그에게 한 말을 저버리지 않으리라."
하고, 드디어 남으로 <서울에> 돌아오기로 결정하였다.
태종은 순의 죽음을 듣고 곧 그의 공을 생각하여 벼슬을 증직하였으며, 또 화공에게 명하여 그 반신을 그려서 그 사실을 나타내었다. 그 부인 임(任)씨는 부고를 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큰 공을 세웠음에도 세자 책봉되지 못하고 소외됨에 박탈감을 느낀 방원의 분개는 숱한 살생과 고통을 야기하며 엉켜드는 양상을 보였다. 박순의 죽음은 태조의 고착된 분노를 움직이며 아버지와의 관계를 복원하는 데 이바지하는 희생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아내에게 지아비를 잃은 박탈감을 제공한다. 결국 남편을 죽게 한 이들에 대한 미움과 자아상실감의 표출로 죽음이라는 결과를 맞이하고 있다.  
李肯翊, 『燃藜室記述』